[kjtimes=정병철 대기자]골프 매너의 시작은 ‘약속’이다. 재계 총수중 이병철 고 삼성 회장만큼 약속을 칼같이 지킨 사람은 없었다. 이 회장은 일을 할 때도 시계를 보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그가 시계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 밴 습관이 시간을 대신해 준다는 의미다.
그는 삼성 회장 재직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근 시간이 8시 30분이었다. 또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출,퇴근때 시계를 보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고 전해진다. 일에 몰두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정확히 퇴근시간인 오후 6시다.
그의 몸 시계는 기계처럼 정확했다. 매사 약속을 칼같이 지킨 이 회장은 골프 약속을 하면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반드시 지켰다. 이 회장은 비오면 ‘비골프’, 눈 오면 ‘설경골프’를 즐겼다.
이 회장이 어느 정도 골프약속이 정확한가. 전 대한골프협회 고문이었던 신용남씨의 회고.
“1969년도 였는지 연도는 잘 기억 안나지만 이 회장은 나와 안양에서 골프약속을 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산야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차도 다니기 힘든 날인데 이 회장이 골프약속을 지킬까 반신반의하며 골프장행을 망설였죠. 제 생각에 아무리 골프약속을 잘 지키는 이 회장이라고 하지만 골프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날씨이기 때문에 오늘 골프는 자연히 취소될 것이라 믿었죠. 그래도 난 설마하고 안양골프장을 향했는데 기어가듯 겨우 그곳에 도착하니 이 회장이 이미 와 있지 않겠습니까. 이 회장은 나에게 ‘신사장 조금 늦었군요. 빨리 옷 갈아 입고 라운딩 합시다’ 하길래 그 소리가 얼마나 무안하게 들렸는지 얼른 옷을 갈아 입었죠.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얼굴이 확 달아 오릅니다. 저도 오랫동안 골프를 쳐 약속 하나 만큼은 잘 지키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 회장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 신씨의 증언은 이어졌다. “아무튼 그날 직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직원들도 회장님이 ‘설마 나오시겠냐’며 반신반의 한채 눈도 치우지 않고 태연하게 있다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눈 치우는데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그 후부터 직원들은 눈이오나 비가오나 늘 최상의 골프장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회장의 설경 골프스타일은 어땠을까. 신씨에 따르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워낙 많이 내려 이 회장은 그날 3홀 정도만 돌 것으로 생각습니다. 그런데 눈위에서 골프 치는 것이 워낙 재미있었는지 18홀을 다 돌았죠. 이로 인해 직원들은 하루종일 전홀의 눈을 치우느라 곤욕을 치렀죠. 이 회장이 눈오는데도 불구하고 18홀을 다 돈 것은 역시 그가 골프를 이해하는 사람이구나 새삼스럽게 느껴죠.
이 회장은 ‘골프는 자연을 정복하는 운동인데 눈이 내린다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는 것이 신씨의 회고다.
이처럼 이 회장은 한 번 골프 약속을 하면 절대로 취소하지 않고 어떤 악천후 기후 에서도 라운딩을 포기하지 않은 근성있는 골퍼 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