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이병철 회장은 골프장 조경에 탁월한 안목을 가졌다. 나무에 비료를 줄 때도 꼭 동서남북 4군데 골고루 주었다. 한해는 동서로, 다음해는 남북쪽으로 비료를 줘 나무가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장은 정성스럽게 가꾼 나무가 결실을 못보면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보완했다. 또 골프장을 돌다가 나무가 골프장 홀과 조화롭지 못하면 정원사를 불러 나무위치를 새로 지정해 주는 등 사소한 것도 빼놓지 않고 신경을 썼다.
이 회장이 골프장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안양골프장 클럽하우스가 완공되기 전 간이 하우스를 설치하고 공을 쳤다. 당시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이 이 회장이 워낙 골프장 일에 매달리자 “회장님 골프장하고 다른 공장하고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비중이 더 큽니까?”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회장은 “골프장은 큰 공장과 같아 두고두고 일거리가 생겨 비중이 비슷하다”며 골프장과 공장을 똑같이 취급했다.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을 가꿀 때 유기질농법을 좋아했다. 어느 해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11월 어느 날인가, 이 회장은 자신의 승용차로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마침 시장마다 김장철이라 곳곳에 배추 잎이 떨어져 수북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본 이 회장은 다음날 직원에게 “시장 통에 버려져 있는 배추 잎을 모두 수거해 오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갑자기 배추 잎을 수거해 오라는 소리에 어리둥절했지만 이 회장은 수거해 온 배추 잎을 모두 퇴비로 만들어 골프장 비료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였다.
이 회장은 직원이 나무나 다른 식물을 훼손하면 그 직원에게는 즉시 주의를 줬다. 그만큼 그는 살아 있는 생명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겼다.
이 회장은 초기 안양골프장을 숲이 우거진 골프장으로 만들기 위해 빨리 자라는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훗날 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 오히려 골프장 조경을 해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를 예견했는지 누군가 “저 나무는 보기 싫으니 다른 쪽으로 옮기자”라고 제안하면 “그냥 놓아두라”는 지시와 함께 “저 나무보다 그 옆에 있는 나무를 옮기라”는 등 훗날을 가상해 이미 나무 위치를 지정해 놓았다.
이 회장은 가끔 직원이 나무를 옮기자고 억지를 부리면 “내가 조경사로 나무 가꾸는데 대한민국 최고인데 왜 억지를 부리냐”며 그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골프용품도 빼놓지 않고 수집했다. 이 회장은 자신이 골프용품을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부지런히 골프용품을 모아 골프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면 유명골프장에는 골프박물관이 있다. 나도 언젠가 안양골프장에 골프박물관을 짓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회장이 작고하지 않았다면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한 안양골프장내 골프박물관 건립은 실현 됐을지 모른다. 골프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은 것은 선친의 뜻인 만큼 언젠가 안양골프장에 골프박물관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을 분신처럼 가꾸어 온 탓에 안양골프장은 1970년대 초 일본 NHK 방송에 명문골프장으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회장의 섬세한 기업가 정신은 여기서도 나타났다. 다음은 신용남씨의 회고.
“제가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후 안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 회장이 저에게 ‘일본 NHK TV에서 세계명문 골프장 순례 프로그램이 있는데 안양골프장이 뽑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저에게 ‘그 방송에 신 사장이 출연 좀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저는 망설였는데 이 회장이 계속 부탁을 해 어쩔 수 없이 ‘알았다’며 머리를 끄덕였죠. 그리고 나서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낯선 티셔츠 한 벌이 보이기에 아내에게 ‘누가 갖다 놓았냐’고 물었더니 ‘삼성 직원이 갖다 놓았는데 이 회장이 내일 골프장에 올 때 반드시 이 티셔츠를 입고 나오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 회장이 왜 이 티셔츠를 입고 오라고 부탁했는지 꼼꼼히 생각했는데 방송 출현을 하니 성의로 갖다 놓은 정도로만 여겼죠. 그 다음날 골프장에서 이 회장을 본 후 그 이유를 물었죠. ‘아니 회장님 웬 티셔츠를 집에 까지---’. 라며 묻자 이 회장은 “신사장 일본 탤레비젼은 칼라 텔레비젼이야! 색깔 있는 셔츠를 입으면 더욱 멋지잖아‘라고 말하며 활짝 웃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때서야 그에게 오늘날 삼성그룹을 일구어 낸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