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성곡은 여야 정치인 막론하고 두루 골프를 쳤다. 그중 특히 장기영씨와 각별한 사이였다. 둘이 어느 정도 가까웠냐면 승용차를 보면 안다. 당시 국가경제를 주도했던 둘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닐 법도 한데 꼭 지프를 타며 국회와 골프장을 누볐다.
지프를 타는 사람의 성격이 활동적이고 소탈하고 도전적이라 할 때 두 사람은 성격 면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둘은 서울컨트리 동우회인 ‘목동회’ 소속이었는데 항상 ‘실과 바늘’처럼 같이 다녔다. 원래 성격이 비숫한 사람끼리는 친한 법인데 둘은 차이점도 많았는데 이는 성격과 골프실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장씨는 성격이 급해 상대방이 얘기하면 중간에 말을 막고 “아, 알았습니다”하는 타입이었다. 반면 성곡은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재경위원장 시절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모두 그를 좋아했다.
골프에서도 장기영은 허리둘레가 커 스윙도 하프스윙에서 다운스윙으로 내려가는데도 애를 먹었지만 성곡은 공격적인 풀스윙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장기영씨와 골프를 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바쁘다.
장기영씨는 몸집이 뚱뚱해 여름철에 골프를 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장기영씨가 스윙만 하면 성곡은 “그 몸에 허리가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다”며 놀려 대는 등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워낙 성곡과 장기영씨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이 같은 농담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런 장기영은 늘 성곡의 ‘봉’이었다. 둘은 내기골프를 즐겼는데 쳤다 하면 그날의 밥값과 술값은 장기영의 독차지였다.
그러나 성곡은 꼭 한사람에게는 내기골프에서 졌다. ‘나르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었다. 내기골프에 강한 성곡은 유달리 김형욱에게만 약했다. 성곡과 김형욱은 ‘맞수’ 였다. 둘은 성격 면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지기 싫어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과 매사 선이 굵고 통이 컸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성곡은 인간적이고 자상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형욱은 겨울바람만큼이나 사납고 매서웠다. 그런 둘이 골프장에서 만나면 소위 전운이 감돌 정도로 살벌했다.
성곡은 골프장에서 김형욱의 무매너와 억지로 인해 “다시는 그 자와 골프를 안친다”고 다짐하지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중앙정보부장이 골프를 하자는데 거절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성곡은 마다못해 김형욱과 골프를 쳤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