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억지골프가 어느 정도인가.
190년대 초 서울컨트리에서 성곡과 김형욱은 내기골프를 했다. 말이 내기골프지 거의 도박골프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김형욱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가령 공이 러프에 들어가면 캐디를 시켜 재빨리 페어웨이로 공을 던지게 한다든지, 페어웨이라도 주변에 장애요인이 있으면 공을 발로 건드린 후 위치를 바꾸는 등 그 수법은 다양했다.
내기 골프에서 이기기 위해 김형욱은 캐디는 변칙에 능숙능란한 사람을 골라 썼고, 상대방이 무매너와 억지에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그 정도 양해않고 무슨 골프를 쳐” 하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국내서 내로라 프로라도 김형욱과 골프를 하면 이길 수 없다. 실제 그와 함께 골프를 했던 O, K, H프로 등도 김형욱의 비위를 맞추느라 플레이를 잘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더욱이 김형욱은 자신에게 개인레슨을 해주던 모 프로의 레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골프채로 후려쳐 중상을 입혔는데 지금도 그때 그 사건이 골퍼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형욱의 골프는 이처럼 악명 높은 골프였다. 이는 강직하기로 유명한 성곡이라도 당할 재간이 없었다. 김형욱의 무소불위 골프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한명 박정희 대통령뿐이었다.
성곡도 그의 기를 꺾을 수 있었지만 당시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정치인으로서 또 기업을 경영하는 경제인으로서 김형욱과 사이가 멀어지면 좋을 리가 없었다.
성곡은 기업을 경영하는 그룹의 총수로서 김형욱과 내기든, 도박골프를 하면서 져 주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이는 성곡에게 져줌으로써 그 돈으로 중앙정보부 부하들에게 회식비를 기부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성곡은 김형욱 외에는 내기든 도박골프든 간에 지지 않는다. 그 역시 익살기 있는 골프를 치면서 반드시 상대방을 꺾는다.
그와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은 “김형욱과 골프를 하면 비신사적 행동으로 인해 다시는 골프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성곡과 골프를 하면 좀 익살기는 있었지만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게 하면서 오히려 즐거움을 주었다”고 한다.
성곡과 골프를 즐겨 친 모 언론사 사장 B씨는 익살기 넘치는 골프를 이렇게 표현한 적 있었다.
“김성곤씨는 골프를 잘 쳤죠. 나와 함께 싱글대를 치면서 엎치락뒤치락 할 때도 많았는데 내기만 하면 김성곤씨에게 졌습니다. 김성곤씨는 골프를 치면서 어느 정도 장난기가 심했는가. 한 번은 서울컨트리 8번 홀에서 골프를 하는데 그만 공이 벙커에 들어갔죠. 벙커가 움푹 파여 위에서 보면 상대방의 샷이 잘 보이지 않는데 김성곤씨는 기가 막히게 벙커 탈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샷으로 벙커를 탈출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모래와 공을 움켜쥐고 페어웨이 가장 자리로 공을 던졌죠. 이를 멀리서 보면 모래가 풍성 일면서 공이 날아오니 아주 잘 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성곡을 선악의 협작으로 생각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골프는 짓궂었죠.”
성곡의 이런 장난기 섞인 골프는 비신사적 행위였지만 언제나 즐거웠다고 한다. 성곡은 정재계는 물론 문화, 의학계까지 다양한 인사들과 골프를 했지만 훗날 그는 골프정치를 했다는 구설수에 오른다.
1970년대 일부 정치인들은 성곡이 골프를 통해 대권 의지를 불태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성곡과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은 대부분 성곡의 인간성에 매료 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정치세를 모은다는 오해를 불러 모았고 결국 성곡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