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고 이병철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을 꼽는다면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다. 이들의 관계는 이 창업주가 지난 1986년 홍 전 회장 별세하자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온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 나의 사돈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각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인이기도 한 그가 이 창업주와 교분을 쌓기 시작한 것은 4•19 후 3•15 선거와 관련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였다.
이들의 인연을 연결시켜 준 인물은 신현확 전 국무총리였다. 신 전 국무총리는 당시 홍 전 회장의 능력을 높이 샀고 이 창업주에게 천거했다.
이를 받아들인 이 창업주는 홍 전 회장에게 면회를 갔다. 이후 그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출감한 그는 삼성에 몸을 담았다. 이후 1965년 삼성이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을 개국하자 홍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이 같은 인연은 사돈관계로까지 발전했다. 홍 전 회장은 이 창업주와 의기투합해 사돈을 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딸인 홍라희 리움 관장을 자연스럽게 이 창업주에게 인사시켰다.
1965년 당시 홍라희 관장은 서울대 미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 때 그녀는 국전(國展) 공예부문에 입선했고 홍 전 회장은 홍 관장에게 ‘이 창업주를 모시고 국전 안내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은 그녀는 이 창업주를 모셨는데 아 자리가 첫 대면이었다.
이 창업주는 홍 관장을 직접 본 뒤 1966년 3남인 이건희 회장과 그녀를 일본 하네다공항에서 첫 대면을 하게 했다. 그 후 홍 관장이 졸업하던 1967년 4월 결혼식을 올리게 했다.
홍 전 회장은 이후 사위인 이 회장에게 18년 동안 경영수업을 시켰다. 매일 저녁 강의를 했다. 헌법과 상법은 물론 주식회사법, 역사, 프랑스어, 정치, 상식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수했다.
이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인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또 있다. 고 구인회 LG그룹(구 럭키금성) 창업주다. 이들의 인연은 1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들은 진주 지수보통학교를 다닐 때 사귄 죽마고우다.
이후 한국 재계의 거목이 된 이들은 둘째딸인 이숙희 여사를 구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에게 출가시키면서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됐다. 당시 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이 중매로 맺어진 이 여사와 구 회장의 결혼은 ‘한국의 쌍두마차인 삼성과 럭키가 사돈을 맺는다’며 장안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창업주와 구 창업주의 관계는 한 때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1968년 삼성그룹이 전자부문에 진출할 때였다. 이 창업주는 산업의 조류를 살피던 중 전자와 전기산업, 나아가 반도체산업에 승부를 걸지 않을 경우 삼성그룹이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고 과감히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그러나 곧 당시 국내 전자•전기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한 사돈기업과 관계가 악화됐다. 이 창업주는 구 창업주와 ‘사돈기업인 금성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두 집안 간에는 불협화음이 생겼고 이숙희 여사는 양가사이에서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삼성가와 LG가는 남들보다 더 먼 사돈그룹이 되어버렸다.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창업주와 조 창업주는 동향이다. 이 같은 인연으로 1948년말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면서 사업적 인연을 맺었다. 이 동업으로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등 계열사를 늘리며 놀라운 성장을 일궜다.
하지만 1951년 9월 지분문제로 둘 사이 틈이 생겼고 1960년 초 이 창업주가 동업 청산을 요구함으로써 둘 사이의 인연은 끊어졌다.
이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에는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도 있다. 이들의 인연은 이양구 창업주가 동업제안을 하면서 맺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설탕왕’으로 성공했던 이양구 창업주는 제당사업에 손을 대고 싶어 이 창업주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당시 이 창업주의 제일제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당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업을 합의한 두 창업주는 1954년 5월 서울 소공동에 ‘한국정당판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제일제당 설탕을 독점판매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6년말 삼척시멘트 인수가 화근이었다. 당시 삼척시멘트는 경영난에 빠져 있었는데 각자 돈 1억환을 출자해 인수했다. 그렇지만 인수한지 6개월이 채 되지도 않아 1억환의 적자가 발생했고 이 창업주는 포기 의사를 밝히고 물러났다.
반면 이양구 창업주는 1957년 6월 삼척시멘트를 단독으로 인수한 후 사명을 동양시멘트로 바꿨다. 이때 그는 설탕 관련 회사들과 삼성 주식을 팔았고 일 인해 이 창업주와의 동업은 끝을 맺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