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삼성가문에는 비운의 주인공이 두 명 있다. 모두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그 첫 번째는 고 이병철 창업주의 둘째 아들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다. 1933년 5월 24일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그는 1991년 7월 19일 불치의 병으로 생을 달리했다. 이 창업주가 1987년 11월 19일 타계했으니 불과 4년 만에 부친을 따라간 셈이다.
이 전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그는 유학시절 만난 나카네 히로미(개명 후 이영자) 여사와 1963년 결혼했다. 그리고는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이 여사는 일본 아이치현 출신으로 일본 미츠이물산에서 중역으로 일했던 나카네 쇼지의 딸이다. 일본 이름을 버리고 ‘이영자’란 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결혼 23년 만인 1986년의 일이다.
이 전 회장은 한 때 이 창업주에게 ‘촉망받는 아들’로 사랑을 받았으나 이른바 ‘한비사건’으로 인해 삼성그룹을 떠났다.
이후 1967년 5월 미국 마그네틱미디어와 제휴해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77년 인수한 특수세라믹사를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설립, 독자운영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실제 새한미디어는 1990년대 당시 연간 2억4000만 개의 테이프를 생산해 24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비디오와 오디오 테이프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사업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의 사업상 성공 가도는 계속되지 못했다. 불치의 병인 백혈병으로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1991년 여름, 미국에서 치료 중 별세를 했다. 향년 58세 때였다.
삼성가에는 비운의 상처가 또 있다.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막내딸인 고 이윤형씨의 죽음이 그것이다. 만 26세의 나이로 ‘생’의 고리를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9년 4월 26일 태어난 이윤형씨는 세간의 알려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물론 삼성가가 집안 사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그녀는 당시 대원외국어고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는 것과 대학 졸업 후 2005년 9월부터 뉴욕대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했다는 것,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와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와 삼성SDS 주식 257만주를 보유 중이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비보가 날아든 것은 2005년 11월 21일의 일이다. 당시 만 26세의 나이였던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1월 18일 밤 유학중인 뉴욕 맨해튼 근처 숙소에서 스스로 목을 맨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미국 뉴욕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시신의 부검을 실시한 결과 목에 줄을 맨 흔적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점이 이 같은 결론을 내게 했다.
젊고 재벌가의 막내딸로 남부러울 것이 없던 그녀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세간에선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자살 동기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됐다.
2014년. 이윤형씨가 떠나간지 9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삼성가의 아픔으로 애틋하므로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다음호에는<현대家를 말한다>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