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한국경제 발전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일가에선 파란만장한 가족사도 빼놓을 수 없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가 잇따른 ‘비운’과 경영난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지난 1938년 경일상회라는 쌀가게로 출발, 국내 최대 대기업 집단인 현대그룹을 창업하는 신화를 만들었던 정 창업주는 6명의 형제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 30명에 달하는 손자손녀를 둔 다복한 대가족의 가장이기도 했지만 형제와 자식들을 먼저 앞세운 불운을 맞았다.
정 창업주의 아들 가운데 사고로 숨지거나 자살한 사람은 4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동생까지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또 첫째 며느리 역시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정 창업주는 이들 중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을 제외한 4명을 2001년 3월 타계하기 이전에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정주영 패밀리’의 불운은 지난 1962년 4월14일 정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기자의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됐다. 정신영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 폐색증으로 타계했다.
정 창업주는 7형제 중 기자를 하던 동생을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해 아꼈다. 그를 정치에 입문시키길 희망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이 같은 애정은 그를 기리기 위해 ‘신영언론재단’을 설립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측근들은 정 창업주가 유능하고 성실한 동생 정신영 기자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는데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를 갑자기 잃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영 기자의 사고사는 현대가문에 찾아온 첫 불운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1982년 4월24일 당시 인천제철 사장으로 근무하던 장남 정몽필 전 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 향후 이어질 현대 패밀리들의 악운을 현실화했다.
새벽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정 전 사장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트레일러 차를 들이받은 것. 이로 인해 그는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이때 정씨 일가는 비통의 질곡 속에 빠졌고 정 창업주는 창업 동지 역할을 했던 장남의 죽음에 대해 무척 애통해 했다.
슬픔이 잊혀질 만 했던 지난 1990년 4월 현대가문에는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정 창업주의 4남 정몽우 현대알미늄 전 회장이 자살한 것이다. 당시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서울 강남 역삼동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했다.
하지만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03년 7월, 정 창업주의 5남인 전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타계했기 때문이다. 정 창업주의 뒤를 이어 대북 사업 바통을 이어받았던 그의 자살은 세간에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