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이지훈 기자]기업의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은행권에선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기업대출을 옥죄기 시작한 게 그것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이 지난해 ‘충당금 폭탄’을 맞으면서 대기업 여신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실적 향상을 위해 방만하게 대출에 나섰다가 피해가 속출했던 까닭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선 상태다.
실제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9%에서 2012년 1.33%로 떨어졌다가 2014년 1.55%, 2015년 1.80%로 다시 상승했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총대손충당금 잔액/고정이하여신)은 2010년 108.5%에서 2012년 159.0%로 올랐다가 2014년 124.0%, 2015년 112.0%로 다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금융권에서 형성되고 있는 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우량기업들마저도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사실 현재 비교적 건전한 대기업들도 당국의 압박과 은행들의 ‘충당금 공포’ 속에서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중은행들은 기업 상황이 좋지 않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중점관리그룹을 선정, 만기 된 여신의 경우 상환요청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서 여신을 줄여가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담보 없이 주로 신용으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계속해서 채무 독촉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례로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9월 통합 이후 대기업 여신을 꾸준히 줄이고 있다. 올해 1분기 대기업 대출이 지난해 말보다 6.2%(1조4140억원) 줄었다. 한 번 터지면 엄청난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대기업 여신 비중을 줄여야 은행의 건전성이 강화된다는 내부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도 비중을 줄이고 있다. 지난 2014년 말 전체 여신에서 대기업 비중은 21.1%에서 올해 3월 말 20.5%로 줄었다. 성동조선과 SPP조선에 거액의 익스포저를 보유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뿐만 아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다른 주요 대형 시중은행들도 대기업 여신을 줄이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추세 속에서 대기업들을 옥죄는 여건들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돈 빌릴 데가 마땅치 않아진 대기업들은 속앓이는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159곳으로 집계됐다. 신용등급 강등 업체 수는 2010년 34개사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4년 133곳까지 늘어나고 지난해에는 160곳에 육박하게 됐다. 이는 1998년의 171개사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AA등급 이상 회사채 시장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호황을 유지했으나 그해 7월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발행이 급격히 줄었다”며 “등급이 하향된 업종 범위도 건설·조선 등 일부 업종에서 정유·화학 및 내수 업종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회사채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특히 AA등급을 중심으로 한 우량등급 회사채 시장이 크게 경색됐다”면서 “시장에 충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구조조정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