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은 1936년 12월 7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냇동생으로 태어났다.

1955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동국대학교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현대건설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동갑내기 조은주 여사와 연애 결혼했다. 조 여사는 당시 현대건설 경리팀에 근무했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정주영 창업회장에게 크든 작든 기업체를 떼어 받은 뒤 독립한 형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독자적인 사업체를 꾸렸다. 정주영 회장의 말이 곧 법이었던 현대가에서 유학 제의를 거절하고 “나도 내 사업을 하겠다”며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8년 8월 직원 7명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에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 없던 건자재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유학 자금을 밑천으로 털어넣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이 일어나 슬레이트 지붕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공장에서 찍어내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KCC가 짧은 시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확실한 납품처 ‘현대’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제법 돈이자 욕심을 부려 초콜릿시장에 뛰어들려고 했으나, 이를 본 정주영 회장에게 “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며 “이왕 사업을 할 거면 국가 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고 꾸짖음을 들어야 했다.

이후 1974년 고려화학을 세운 뒤 1989년 6월 건설사업 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을 세웠다. 같은 해 8월 금강레저, 1990년 고려시리카, 1996년 금강화학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하고 회사 이름을 금강고려화학으로 정했다. 2001년 프로농구단 KCC이지스를 창단했다. 현재는 경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있다.

KCC는 1981년부터 31년간 태화강 하천부지 1만4000m2를 불법 점거해 사무실과 공장 등으로 상용하다 2012년 1월 감사원 감사에 의해 적발됐다. 같은 해 7월 울주군으로부터 건축물 사용승인 취소 및 사용중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정몽익 사장은 울주경찰서의 출석 조사 요구를 묵살하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비상장사 기업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고액 배당을 하는 등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CC는 2012년부터 꾸준히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지적받아 왔으며, 2014년 3월에는 정 사장이 KCC 자회사인 코리아오토글라스로부터 순이익보다 큰 40억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KCC가 2012년 2월 75억원에 매입한 서울 이태원동 102-3번지 토지(토지면적 605㎡)를 소유권 취득 후 2년 만에 ‘미사용 자산’이라는 이유로 2014년 2월 정상영·정몽익 부자에게 74억8700만원에 매각해 헐값에 팔았다는 논란이 있었다.

KCC는 당시 공시를 통해 “거래금액은 외부 감정평가사 두 곳의 감정평가액 산술평균”이라고 밝혔지만 인근 토지의 실거래가격이 3.3㎡당 5000만원을 넘는 것에 비춰 3.3㎡당 1000만원 가량 싸게 팔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주영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부인 조은주와의 사이에 3형제를 뒀다. 

장남 정몽진 KCC 회장은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은진과 결혼해 정재림, 정명선 1남1녀를 뒀다. 장녀 정재림씨는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국내로 돌아왔다. 다만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외국인학교에 재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 정명선씨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외국인학교나 사립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에 재학했다.

차남 정몽익 KCC 사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외조카인 최은정과 결혼해 정선우, 정수윤, 정제선 1남2녀를 뒀다. 2013년 5월 "부부관계 회복이 힘들 정도로 가정이 파탄됐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고 패소판결을 받았다. 이어 항소심에서 2012년부터 시작된 자신의 불륜관계까지 공개했지만 2016년 8월 서울가정법원 항소부는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데 대한 책임은 정 사장의 잘못에 기인하고 있다"면서 그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자녀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지만, 아들 제선군은 어린이 주식부자로 이름을 자주 올렸다.

삼남인 정몽열 KCC건설 사장은 중소기업 사장의 딸인 이수잔과 결혼해 정다인, 정도선 1남1녀를 뒀다. 작고 단단한 체구와 사업 수완이 아버지 정상영 명예회장을 빼닮았다고 평가 받는다. 2003년 KCC건설 사장으로 승진한 뒤 2년 만에 아파트 ‘스위첸’과 주상복합 ‘웰츠타워’를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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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36년 12월 7일
직업: 기업인
직함: KCC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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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정봉식 

 

 

모 

한성실 

 

 

형 

정주영 

1915년 11월 25일~2001년 3월 21일 

현대그룹 창업주 

형 

정인영 

1920년 5월 6일~2006년 7월 20일 

한라그룹 명예회장 

형 

정순영 

1922년 12월 12일~2005년 10월 13일 

성우그룹 명예회장 

누나 

정희영 

1925년~2015년 7월 16일  

故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 배우자 

형 

정세영 

1928년 6월 6일~2005년 5월 21일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형 

정신영 

1931년~1962년 

전 동아일보 기자 

배우자 

조은주 

1936년 

 

장남 

정몽진 

1960년 8월 5일 

KCC그룹 회장 

자부 

홍은진 

1964년 8월 7일 

 

차남 

정몽익 

1962년 1월 28일 

KCC그룹 사장 

자부 

최은정 

1973년 

 

삼남 

정몽열 

1964년 1월 11일 

KCC건설 사장 

자부 

이수잔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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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용산고등학교 졸(1955년)
동국대학교 법학 학사(1961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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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금강스레트공업(1958년)
현대자동차 부사장(1970년)
고려화학(1974년)
금강 회장(1983년)
고려화학 회장(1983년)
대한핸드볼협회 회장(1997년)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2000년)
금강종합건설 명예회장(2000년)
KCC 명예회장(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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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케이씨씨 53만8177주(5.10%)
케이씨씨자원개발 1만2630주(1.26%)
금강레저 1만주(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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