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구본무 LG그룹 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하정임 여사 사이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삼성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가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제대 후 미국 애쉴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2년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딸 김영식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다가 구 회장과 결혼하면서 당시 이대 학칙에 따라 졸업하지 못했다. 대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술을 전공했다.

1975년 30세의 나이로 럭키(現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처럼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친 뒤인 1981년에서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했다. 1983년부터는 일본 도쿄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다가 입사 10년만인 1985년에 기획조정실 전무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1989년 LG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올랐고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출범하면서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 3월 구자경 명예회장 시절 선포한 경영이념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의 행동방식인 ‘정도경영’을 실천해 궁극적 지향점인 ‘일등 LG’를 달성하자는 내용의 ‘LG way’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선포했다.

중학생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마주친 새와 맺은 인연으로 2000년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낼 정도로 집념이 대단하다. 여의도 LG트윈타워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구 회장의 각별한 보살핌 덕에 무사히 새끼를 낳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 같은 집념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도 있다. 1991년부터 손을 댄 배터리 사업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그룹 내에서 사업을 접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구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안고 끈질기게 투자를 이어간 끝에 LG화학은 현재 GM, 포드, 현대기아차, 르노, 아우디 등 20여 개 주요 완성차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올레드(OLED) TV도 포기하지 않고 개발을 이어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데 이어 플렉서블 및 투명 OLED와 플렉서블 와이어 배터리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를 올레드시장의 강자로 키워냈다.

IMF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전경련을 앞세워 추진한 반도체 빅딜에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다. LG, 삼성, 현대 기존 반도체 3사 중 LG반도체와 현대전자를 통합해 삼성과 2사 경쟁체제로 재편한다는 게 빅딜의 내용이다.

LG는 이 빅딜이 기업간 자율조정이라는 원칙과 시장경제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의 강력한 권유로 추진되는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빅딜 후 ‘LG 60년사’를 통해 반도체 빅딜이 현대전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불공정하고 편파 시비를 야기했다고 지적하면서 LG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정부의 강요였다고 비판했다.

2016년 12월 6일 국회에서 진행된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에서 LG그룹의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다. LG가 반도체 사업을 빼앗기다시피 내놓은 지 18년이 지나 전경련 탈퇴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날 구 회장은 "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각 기업들의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여일 후 LG그룹은 전경련 탈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구본무 회장은 이에 앞서 2016년 11월 국정농단과 관련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두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돈을 출연한 배경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LG그룹은 구 회장이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한 뒤 미르∙K스포츠재단에 78억원을 출연했다.

LG카드는 2002년 국내 카드사 중 최초로 1000만명 고객 유치에 성공했으나 무분별한 고객 유치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 문제점을 안고 2007년 신한카드와 통합됐다.

4조 원을 투자해 2020년 최종완공을 목표로 국내 최대규모의 융복합 연구개발(R&D)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2000년대 LG그룹에서 GS그룹, LS그룹 등을 분리시키고 분할과 합병 등을 통해 현재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참여연대로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고발당했다. 참여연대는 당시 고발장을 통해 “100억원대의 불법정치자금을 그룹 총수나 그 가족의 개인재산에서 조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각 기업 총수들이 대선자금을 준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당사자들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증거법상 기소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7년 1월 19일 저녁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최고경영진 4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하며 창립 70년 의미를 나누는 자리에서 ‘100년을 넘어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소탈한 모습을 보여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계열사 사장들과 동행하는 출장이 아니면 수행은 늘 직원 한명이 담당하도록 한다. 임원들이 공항으로 배웅이나 마중 나오는 것도 금하고 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과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을 ‘경멸’할 정도로 싫어한다.

2016년 주요 기업 임원 중 8번째로 많은 급여를 받았다. 구 회장은 LG로부터 급여 39억1400만원과 상여 19억1400만원 등 총 58억28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배우자 김영식씨와 슬하에 2녀를 뒀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인 구광모 부장은 2004년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양자로 입적했다.

장남 구광모 LG 시너지팀 부장은 미국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MBA를 수료했다. 2009년부터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근무, 2013년 초 귀국해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 HA(홈어플라이언스) 등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2013년 LG전자 부장으로 진급한 후 LG 시너지팀으로 이동해 1년 6개월 만에 상무 승진했다. 지난 2014년 LG그룹 임원인사를 통해 상무로 승진했다. 2009년 중소 식품회사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 정효정씨와 결혼했다.

장녀 구연경씨는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2006년 5월 29일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구연수씨는 20세가 되던 해인 2016년 12월 16일부터 23일까지 6거래일 동안 LG 주식 21만주를 장내매수해 눈길을 끌었다. 23일 종가(5만9000원) 기준 123억9000만원에 이르는 규모다. 구씨는 이 거래를 통해 LG 지분율을 0.03%에서 0.15%로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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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45년 2월 10일
직업: 기업인
직함: LG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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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조부 

구인회 

1907년 8월 27일~1969년 12월 31일 

LG그룹 창업주 

조모 

허을수 

1907년~1986년 6월 13일 

 

부 

구자경 

1925년 4월 24일 

LG그룹 명예회장 

모 

하정임 

1924년 9월 1일~2008년 1월 9일 

 

여동생 

구훤미 

1947년 

故 김화중 배우자 

남동생 

구본능 

1949년 3월 26일 

희성그룹 회장 

남동생 

구본준 

1951년 12월 24일 

LG전자 부회장 

여동생 

구미정 

1955년 5월 7일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배우자 

남동생 

구본식 

1958년 6월 28일 

희성그룹 부회장 

배우자 

김영식 

1952년 

故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 장관 딸 

장남 

구광모 

1978년 1월 

LG 시너지팀 상무 

장녀 

구연경 

1978년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 배우자 

차녀 

구연수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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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삼성고등학교 졸
연세대학교 입학(1964년)
미국 애슐랜드대학교 학사(1972년)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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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럭키 심사과장(1975년)
럭키 유지총괄본부 본부장(1979년)
금성사 기획심사본부장(1980년)
금성사 이사(1981년)
금성사 일본 동경주재 이사(1983년)
금성사 일본 동경주재 상무(1984년)
금성사 회장실 전무(1985년)
금성사 회장실 부사장(198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1989년)
금성사 부회장(1989년)
LG트윈스 구단주(1990년)
LG치타스 구단주(1991년)
LG그룹 회장(1995년)
LG공익재단 이사장(1997년)
LG화학 대표이사 회장(1998년)
LG전자 대표이사 회장(1998년)
LGCI 대표이사 회장(20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환경위원회 위원장(2001년)
LGEI 대표이사 회장(2002년)
LG 대표이사 회장(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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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금탑산업훈장(1993년)
산학협동상 특별상(1996년)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2009년)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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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LG 1945만8169주(11.28%)
LG상사 97만4790주(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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