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창업주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은 기업가보다는 선비와 더 어울리는 성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도 이 평가에 동의한다. 조석래 회장은 2006년 조홍제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아버지께서는 사실 사업가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업가는 곧 ‘장삿꾼’이 돼야 하는데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이상’이 너무 높았다. 오히려 선비의 성품이 강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다른 경제계 인사들도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그를 두고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에 종종 비유했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은 조 회장을 가리켜 “그 분이야 말로 선비 정신이 있는 기업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비와 같이 올곧고 강직한 성품은 오히려 사업가로서 조 회장을 성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는 매사에 꼼꼼하고 치밀하게 경영활동을 했고 이것이 효성의 밑거름을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결재를 할 때 1안 외에 2,·3안이 없을 때는 보는 것조차 거부했고 대안을 준비하지 않은 임원은 가차없이 벌했다는 일화는 그의 치밀한 성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조 회장은 성냥개비 다섯 개로 계산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사용해 단 하나의 틀린 숫자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꼼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직하고 빈틈없는 업무 스타일과 함께 조 회장의 또 다른 경영철학은 인재우선주의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인재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원칙을 늘 강조했다. 특히 조 회장은 이공계 인력을 우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 없이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같은 조 회장의 철학으로 인해 효성에는 사업 초기부터 섬유와 화학을 전공한 관리자들이 많았다. 배기은 전 효성 부회장,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도 아낌이 없었다. 조 회장은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한발 앞장 선 기술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인재를 판단하는 조 회장의 기준도 엄격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할 때 반골유무(叛骨有無·배반할 사람인지 아닌지), 지론출중(持論出衆·식견이 뛰어난지), 진정가장(眞正家長·가정에 최선을 다하는지)의 세가지를 잣대로 뒀다.
특히 여자 문제에 엄격해 외도를 하거나 첩을 얻는 회사 직원은 무조건 내치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다. 한 임원이 외도로 이혼을 하자 바로 해고를 시켰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를 어떻게 다스리겠나”라는 것이 조 회장의 지론이었던 것.
이처럼 조 회장의 일화들이 보여주는 인재와 기술 우선주의, 치밀한 경영, 심사숙고형 기업문화 등은 지금도 효성에 남아있는 귀한 유산이다.
<kj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