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1923년 6월 24일 LG그룹 창업주 故 구인회의 셋째 동생으로 태어났다.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故 최무 여사와 결혼한 뒤 후쿠오카고등학교를 나왔다. 후쿠오카고를 졸업하고 징병으로 만주에 끌려갔다가 해방 후 광복군으로 귀국한 뒤 1950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 서울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 연구에 몰두해 투명크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부산대 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 중이던 장조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락희화학에 전무로 입사해 큰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이후 깨지지 않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3년 락희화학이 서울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구태회 명예회장이었다.

LG그룹의 전신인 금성사와 럭키금성그룹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하다가 1958년 제1공화국에서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자유당 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다시 진양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이후 제6대부터 제10대까지 민주공화당 후보로 연달아 당선에 성공해 6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2년 럭키금성그룹 고문으로 경영에 복귀하기 전까지 정계에서 공화당 대변인 겸 원내총무, 무임소장관, 국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았다.

2003년 11월 동생인 故 구평회 E1 명예회장, 故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LG전선그룹으로 그룹을 분리했다. 창업공신 3형제의 활약에 비하면 자산이 5조원 남짓한 전선그룹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외부의 평가도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큰 불만없이 따랐다. 2005년 LG는 LG산전(현 LS산전)을 LS그룹에 편입시키며 3형제의 노고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현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를 본부로 하고 있는 LS그룹은 LS전선∙LS산전∙LS Nikko 동제련∙ 가온전선∙LS엠트론∙E1∙예스코 등 1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2004년 선박용 케이블업체인 진로산업 인수를 둘러싸고 대한전선과 충돌을 빚었다. LS전선은 2004년 10월 진로산업 최종 인수협상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진로산업의 최대 채권자인 대한전선이 정리 계획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법원의 강제인가에도 대한전선은 항고와 함께 정리계획안 수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며 물고 늘어졌다. 2005년 1월 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으로 LS전선은 진로산업을 인수할 수 있었다.

LS그룹은 유교적 가풍이 강한 범LG 특유의 경영문화를 여전히 이어오고 있어 ‘반(半)자식’이라는 사위들도 그룹 경영과는 무관하다. 구태회 명예회장 역시 2명의 사위를 얻었지만 현재 그룹에서 일하는 사위는 없다.

다만 맏사위 이준범 회장이 1984년 창업한 화인이 친정집 LG그룹 계열사 LG생활건강을 주 거래처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LG생활건강 매출 비중이 2012년 기준 62%에 달했다. 1989년 LG생활건강의 전신인 LG화학으로부터 생활용품 공급업체 품질관리대상을 수상한 점에 비춰볼 때 초창기 때부터 사업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화인은 2016년 기준 매출은 166억원, 영업이익은 21억원이다.

화인유통도 비슷하다. 경기도 용인과 양주에 물류센터를 둔 이 회사는 범LG가인 GS리테일의 물류운송 대행 사업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을 때가 200억 원이고, 최근 180억원 수준으로 내려왔다. 영업이익도 계속해서 악화돼 2016년에는 6억원이 채 안 됐다. 그나마도 총자산에서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상당 부분 이자로 빠져나가 순이익은 종종 적자를 내고 있다.

배우자 최무 여사와 슬하에 4남2녀를 뒀다.

장녀 구근희씨는 구태회 명예회장이 공화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있을 때인 1966년 이계순 전 농림부 장관이자 당시 경남도지사의 아들 이준범 화인 회장과 결혼했다. LS 집안 내 처음으로 관료 집안과 맺어진 혼맥이다.

장남 구자홍 LS Nikko 동제련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잠깐 다니다가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로 유학을 떠났다가 뉴저지주립대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지순혜씨를 만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했다. 1973년 LG상사에 입사해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지사 근무를 통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영국에서 찰스 황태자를 만났을 때 영국 사람들조차 발음과 표현에 감탄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 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1987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자리를 옮긴 뒤 2003년까지 18년을 전자 부문에서 근무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9년 전경련이 조사한 CEO 경영 지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스타 CEO’다. GE, 모토로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의 CEO와도 교우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녀 구혜정씨는 이인정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차남 구자엽 LS전선 회장은 경복고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주로 LG화재에서 일했다. LG건설 CFO와 사장을 지낸 뒤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태향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는데 장녀 구은희씨를 통해 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 정일선 BNG 스틸 사장을 사위로 뒀다.

삼남 故 구자명 전 LS Nikko 동제련 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아버지와 같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정치인인의 아들이자 재벌가 자제로는 흔치 않은 학군단 출신으로 포병학교를 수석으로 마치고 전방부대 근무를 자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행정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미 쉐브론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1984년 호남정유 원유 수급조정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차녀 조미연씨와 결혼했다.

사남 구자철 예스코 회장은 LG상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일찌감치 독립 경영을 했다. 외동딸 구원희씨가 박용만 두산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와 결혼해 두산과 사돈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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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23년 6월 24일~2016년 5월 7일
직업: 기업인, 정치인
직함: LS전선 명예회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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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구재서 

 

 

형 

구인회 

1907년 8월 27일~1969년 12월 31일 

LG그룹 창업주 

형 

구철회 

1911년~1975년 

LG그룹 창업고문 

형 

구정회 

1917년~1978년 

LG그룹 창업고문 

남동생 

구평회 

1926년~2012년 

E1 명예회장 

남동생 

구두회 

1928년~2011년 

예스코 명예회장 

배우자 

최무 

1922년~2015년 5월 24일 

 

장녀 

구근희 

1943년 

이준범 ㈜화인 회장 배우자 

장남 

구자홍 

1946년 12월 11일 

LS Nikko 동제련 회장 

차녀 

구혜정 

1948년 

이인정 ㈜태인 회장 배우자 

차남 

구자엽 

1950년 12월 30일 

LS전선 부회장 

삼남 

구자명 

1952년 11월 25일~2014년 11월 26일 

전 LS Nikko 동제련 부회장 

사남 

구자철 

1955년 2월 14일 

예스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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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진주중학교 졸
후쿠오카고등학교 졸(194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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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락희화학 전무(1950년)
제4대 자유당 국회의원(1958년)
금성사 부사장(1962년)
제6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1963년)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 겸 대변인(1964년)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부의장(1965년)
제7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1967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1969년)
제8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1971년)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1971년)
제9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1973년)
제23대 무임소 장관(1973년)
유신정우회 정책위원회 부의장 겸 정책연구실장(1973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1975년)
제9대 국회 부의장(1976년)
제10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1979년)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1979년)
럭키금성그룹 고문(1982년)
LG그룹 창업고문(1995년)
LG화학 창업고문(1998년)
LG전선 명예회장(2002년)
LS전선 명예회장(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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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월남공화국 수교훈장(1966년)
청조근정훈장(1975년)
콜롬비아공화국 국회장(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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