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은 1951년 2월 12일(음력 1월 7일) 서울에서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故 김정일 여사 사이 4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경기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 故 김영혜 여사와 결혼했다. 김 여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조 회장과 연애를 통해 결혼했다. 한진가 2세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71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이후 한진건설, 한진중공업 등 계열사에서 일했고, 1989년 한일레저 사장, 1993년 한지건설의 전신인 한일개발 사장을 역임했다.

한진그룹이 분리될 때 한진중공업을 물려받은 뒤 1999년 한진건설이 한진중공업에 흡수합병됨에 따라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아버지인 조중훈 창업주 타계 이후 한진중공업을 계열분리하면서 2003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2007년 한진중공업을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을 분리한 뒤 지주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에 취임했다.

해운경기 악화가 한진중공업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지자 2010년부터 적자에 허덕였다. 2013년 유상증자로 1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과중한 차입금과 수주고갈로 유동성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러나 2016년 1월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뒤 실사와 구조조정, 자구계획 수립 등 절차를 진행하고 같은 해 5월 채권단과 자율협약 양해각서를 체결해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

한진중공업은 자구계획안에 따라 부산 다대포공장을 1600억원에 팔았고 인천 북항배후지도 3000억원에 매각했다.

한진중공업은 협약 체결에 따라 채권단으로부터 2016년 2월 1300억원 자금 지원을 받은 것에 추가로 1200억원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 또 협약 만료기간인 2018년 12월 말까지 출자전환을 통해 1000억원대의 이자를 감면 받고 원금상환이 유예됐다.

특히 통상적인 채권단 자율협약과 달리 감자를 진행할 필요가 없어 조 회장의 한진중공업 경영권은 유지됐다.

조 회장은 여기에 영도조선소가 군함과 쇄빙선 등 특수선을 담당하고 수빅조선소가 일반 상선을 담당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쳐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필리핀 수빅만에 총 면적 300ha의 조선소를 완공했다. 연간 약 60만톤 수준의 조립량을 갖춘 이 조선소는 2015년 완공 6년 만에 100번째 선박 건조에 성공하며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수빅조선소의 수주잔액이 감소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007년 5월 한진중공업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같은해 1월과 4월 두 차례에 나눠 법인과 개인 명의로 각각 한진중공업 주식 97만주와 9만주를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 발표 이후 약 400억원의 평가 차익을 얻었다. 이에 검찰은 2008년 5월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여부를 조사했다.

이와 관련 한진중공업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추가 지분을 매입한 것에 불과하다며 당시 조선주가 호황이어서 주가가 올랐지만 매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주식 매입 과정에서 대주주의 주식 대량 보유 신고 의무를 어긴 것과 관련해서는 실무진의 공시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2010년 수주실적 부진을 이유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생산직원 300명에 대한 구조조정과 추가로 100명에 대한 임금 삭감을 노조에 요구했다. 그러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같은 해 12월 노동자 400명을 희망퇴직 시키겠다고 통보해 일명 ‘한진중공업사태’를 빚었다.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이 발표된 지 닷새 만에 “현장에서 땀 흘리며 오늘의 한진을 만든 노동자들을 수빅조선소의 필리핀 노동자로 대체하고 영도조선소를 버리고 있다”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2011년 2월 근무한 연차에 따른 퇴직위로금을 ‘6개월~15개월’에서 ‘6개월~22개월’로 변경하며 3차 희망퇴직을 공고한 뒤 구조조정 대상 직원 400명 가운데 퇴직을 희망하지 않은 94명에 대해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이와 함께 영도 조선소, 울산 공장, 다대포 공장을 폐쇄했다.

2011년 6월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에 난입하는 등 사측과 충돌이 극에 달하고 논란이 커지자 국회가 청문회를 열고 조 회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 회장이 해외 출장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청문회는 불발됐다.

조 회장은 2011년 8월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해 희망퇴직자 306명에게 경영 정상화 후 재고용과 자녀에 대한 총 100억원 규모의 학자금 지원을 약속한 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진중공업사태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2011년 8월 18일 조 회장이 청문회에 참석하면서 컨설팅을 받은 ‘청문회 대응문건’이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에 의해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대답은 최대한 느리게, 어눌하게 말하라’고 적혀 있었다.

조 회장은 이 과정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리더십에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은둔형 CEO’여서 한진중공업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3년 4월 토지 및 소송사기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한진중공업이 1990년대 초 H토건과 함께 조성하고 공동명의로 등기했던 토지가 2005년 영종도 신도시 개발지역에 포함되면서 분쟁이 벌어졌다.

해당부지는 시가 200억여원 어치의 땅으로 양사가 영종도 수면을 매립해 조성한 토지의 일부다. 한진중공업은 이 땅이 영종도 신도시 개발지역에 포함되자 토지공사는 보상금 1050억원을 책정해 법원에 공탁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가운데 240억원이 H토건 대표 이씨의 몫이었으나 한진중공업이 “등기만 공동으로 했을 뿐 전체가 회사 땅”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보상금도 모두 가져갔다. 이에 이씨가 한진중공업이 재판에서 서류를 조작했다며 고소한 것이다.

2017년 5월 한진중공업이 영종도 제2준설토 투기장 제방에 배면용 토사로 사업장 폐기물인 ‘알루미늄 광재’를 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진중공업은 2016년 9월부터 재활용업체 글로벌삼천을 통해 알루미늄 광재 4만5000t을 배면토사로 재활용했다.

알루미늄 제품의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알루미늄 광재는 물·공기와 접촉 시 화학반응으로 악취·화재가 발생한다. 영종주민들은 미단시티 해안에 알루미늄 광재의 매립과 관련 사법 당국에 수사를 요구할 방침이다. 관할 인천 중구 역시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오염토에 대한 정화 또는 재시공을 요구하기로 했다. 

형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는 제사를 따로 지낼 정도로 사이가 매우 나쁘다. 막내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손 잡고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법정 공방도 여러 차례 벌였다.

선친의 유산배분과 관련해 형 조양호 회장과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차례 소송을 겪었고 조양호 회장과 고 조수호 회장,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음력과 양력으로 기일을 나눠 제사를 따로 지낼 정도까지 악화됐다.

2005년 동생인 조정호 회장과 함께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정석기업 주식명의 개서절차 이행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두 동생은 세 형제의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외숙부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의 정석기업 주식이 조중훈 전 회장의 차명주식이라며 분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한진그룹은 “주식 실소유주가 조양호 회장의 숙부와 외숙부”라며 “조양호 회장이 마음대로 나눠줄 수도 없고 소송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조중건 전 부회장과 김성배 고문의 뜻에 따라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에게 증여토록 하는 내용의 조정결정을 내렸다. 당사자들이 모두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소송은 종결됐다.

두 동생은 이어 2006년 대한항공 면세품 공급업체 변경을 놓고 “형이 동의 없이 면세품 납품 알선업체를 마음대로 바꾼 만큼 30억원을 배상하라”며 또다시 조양호 회장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서울중앙지법이 면세품 납품업체 변경이 대한항공의 경영권 행사에 포함된다며 2008년 조양호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두 동생은 서울고법에 항소를 제기한 뒤 법원의 자체 조정에 따라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6억원씩 지급 받고 합의했다.

2008년에는 부친 조중훈 창업주의 사가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소재 ‘부암장’의 기념관 조성 약속 불이행에 따른 1억원의 정신적 피해보상 및 부암장의 상속지분 이전등기 이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2011년 법원의 비공개 화해 권고안에 따라 마무리됐다.

2012년 대한항공이 “칼 호텔 부지의 소유권을 이전하라”고 주장하며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홀딩스, 선인터내셔날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의 비공개 조정을 끝으로 10년간 지속돼 온 한진가 2세의 법정다툼은 마무리됐다.

2016년 한진중공업으로부터 7억4500만원의 보수를 지급받았으나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를 전액 반납했다.

배우자 김영혜 여사와 슬하에 조원국·조민희 1남1녀를 뒀다.

장남 조원국 한진중공업 전무는 서울 외국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1999년 브라운대학교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웨스턴주립대학 로스쿨을 마치고 2007년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 한진중공업에 선박영업담당 임원으로 입사한 뒤 영업업무를 주로 맡았고 현재는 조선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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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50년 2월 12일
직업: 기업인
직함: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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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조중훈 

1920년 2월 11일~2002년 11월 17일 

한진그룹 창업주 

모 

김정일 

1923년 7월 28일~2016년 12월 15일 

 

누나 

조현숙 

1945년 10월 20일 

이태희 변호사 배우자 

형 

조양호 

1949년 3월 8일 

한진그룹 회장 

남동생 

조수호 

1952년 6월 21일~2006년 11월 26일 

전 한진해운 회장 

남동생 

조정호 

1954년 9월 1일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배우자 

김영혜 

???~2013년 12월 1일 

 

장남 

조원국 

1976년 4월 

한진중공업 조선영업총괄 전무 

장녀 

조민희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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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경복고등학교 졸(1969년)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1972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최고국제관리과정 수료(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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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대한항공 입사(1971년)
한일레저 사장(1989년)
한진종합건설(現 한진중공업) 부사장(1991년)
한일개발(現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사장(1993년)
한진건설(現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사장(1994년)
한진건설 대표이사 부회장(1999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1999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 회장(2003년)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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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해외건설 30돌 기념식 은탑산업훈장(1995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식 금탑산업훈장(2001년)
필리핀 대통령훈장(2008년)
올해의 고대 경영인상(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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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한진중공업홀딩스 1373만81주(46.50%)
한진중공업 52만8546주(0.50%)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