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주당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보름여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해당 여부 판단 기준 및 사례’를 두고 재계에서는 혼란만 가중시키는 미흡한 기준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어려우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 즉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
출장과 관련해서는 통상적으로 근로시간이지만 출장 전 취업규칙 등을 통해 노사가 합의할 것을 권고했다. 접대는 사용자의 지시 또는 승인이 있으면 근로시간으로 판단했고 회식시간은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육시간은 강제성이 근로시간 여부의 판단근거로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는 각종 교육 참가는 근로시간이지만 근로자가 개인 차원에서 법정 의무 이행에 따른 교육을 받거나 이수가 권고되는 정도의 교육은 근로시간이 아니다.
워크숍이나 세미나의 경우도 가이드라인은 ‘사용자 지휘·감독하에 있는 세미나는 근로시간이지만 행사 도중 친목 도모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워크숍을 하는 이유가 직원 단합과 교육이란 점에서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다.
근무 중 흡연이나 점심식사 시간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에 따라 근로시간 해당 여부가 달라지는데 흡연·식사 중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즉시 응대가 가능하면 근로시간, 그렇지 않으면 휴게시간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고용부가 가이드라인을 급하게 내놓았지만 과거 행정해석과 판례 등을 모아놓은 수준에 불과하다”며 “구체적인 항목마다 기준이 너무 불분명해 노사에게 공을 던지고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것밖에 안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양한 직종·일률적 잣대 적용 ‘모순’
특히 수많은 직종과 근무형태가 다양하고 산업별 특수성이 큰 상황에서 경직된 근로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재계의 한 목소리다.
일례로 정유사의 경우 최소한의 인력으로 대규모 설비를 운영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대규모 정기보수 기간에는 주당 70~80시간의 집중근무가 불가피하다.
4차 산업의 핵심인 ICT(정보통신기술) 업계 역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ICT 업계와 현장 소통 간담회’에서 24시간 시스템 운영, 장애처리, 비상근무 등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영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SW(소프트웨어)산업협회도 지속적인 유지관리·운영이 필요한 SW산업의 특성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된 보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전달했다.
시행 후 보완 아닌 ‘시범 운영기간’ 필요
재계에서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이 보장된 시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불명확해 정부의 두루뭉술한 가이드라인으로는 현장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출장, 교육연수, 회식 등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해 모두 개별 기준을 기업에서 마련하라는 것인데 법리적 판단 여부에 따라 법적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며 “국내 주요 그룹들이 선택적 근로시간제, 유연근무제 등을 선제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경쟁력의 핵심인 R&D 등 특수성 있는 부문에 대해선 고심이 많은 상황”이라 말했다.
이에 제도 먼저 시행후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완하는게 아니라 제도 시행을 늦추고 어느 정도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 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기업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최소 1분기 정도 시범 운영을 통해 명확한 법 해석과 실효성 있는 보완대책을 마련하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