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코로나19 못 다한 이야기들⑮]오순옥 본부장…미얀마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주다

오순옥 청소년인성진흥협회 본부장

 

[KJtimes]“비행기를 세 번이나 환승한다구요?”

타무까지 가려면 중국을 경유해서 보통 3~4번 경유해야 합니다.”

비행기를 서너 번 갈아타요? 그건 못합니다. 일행들 연세가 일흔이 넘는 분이 계신데. 도중에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직항으로 가면 비용이 배로 들어요.”

다시 고려해주시지요?”


가재산 회장님 요구가 난감하다. 우리 팀은 7년 동안 미얀마 타무로 가기 위해서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의 비행기 환승은 기본이었다. 비용을 절감해서, 그곳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논의 끝에 그동안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던 미얀마 직항으로 양곤을 거쳐 국내선을 이용하여 칼레공항까지 가는 코스로 결정했다. 중국을 경유해서 만델레이로 들어가는 원래 계획을 직항으로 변경한 것이다. 항공비용만 두 배 이상 뛰었다.



202022일 미얀마 청소년 리더십 캠프를 위하여 20명의 일행이 준비를 하고 있는 1월 중순부터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비행 편을 예약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코로나 발생지 역인 중국 우한이 폐쇄되면서 우한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 공항이 폐쇄되더니 공항을 걸어 잠그는 나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얀마 여행은 문제가 없었으나 미얀마 출발팀들도 술렁거렸다. 일행들 중에는 이런 시기에 미얀마에 가야 하느냐는 의견들이 돌기 시작했다.


집행부는 무조건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참가자들의 결정을 기다렸다. 타무에 있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한국 팀이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특별히 타무 지역 최초로 12개 중학교와 6개 고등학교에서 선발된 장학생 100명 교육과 장학금 수여식을 위해 타무 지역 장학위원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20일까지 미얀마 자원봉사자들의 최종 의견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내가 반대를 하네.”

아이들이 걱정을 합니다.”

남편이 안 된다고 하네요.”


여러 의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한 분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19명이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확정되었다. 드디어 갈수 있게 되는구나! 늘 가던 대로 중국 경유했더라면 못 갈 뻔했는데 중국 경유 취소하고 미얀마로 직행하기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도 우리를 비켜가는구나. 가 회장님이 직항으로 가자고 고집 부리시더니 선견지명이 있으셨구나.


코로나19 상황인지라 마스크, 소독제, 비상약 등 준비를 철저히 하고 19명이 미얀마 캠프 길에 올랐다. 새벽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미얀마 양곤에 오전 5시경 도착했다. 코로나19를 염려하여 미얀마 캠프팀들은 마스크 착용하고 시내를 활보하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 팀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를 경계한다. 가이드에게 양곤의 코로나19 상황을 물어보니 아직 이곳은 발병자가 없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이 우리를 경계한 것이 당연하구나 싶다. 우리 팀이 오히려 코로나 안전지대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도 현지인들처럼 마스크를 벗고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이곳의 안전한 상황을 전했다.

 

한국 시니어들과 미얀마 꿈나무 천사들

 

우리는 오전 1230분에 칼레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2시간 후칼레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칼레대학으로 향했다. 칼레대학 부총장님의 영접을 받고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태양광교육팀, 리더십교육팀, IT교육팀은 대학에 머물고 타무지역 봉사팀은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타무로 이동했다.


타무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1970년대 시골 풍경이다. 나무로 엮어서 만들어진 집들, 굽이굽이 정겨운 작은 길, 좁은 길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합해 놓은 툭툭이는 우리 미얀마 캠프팀의 운송수단 이었던 동남아의 고급 운송수단이다.


우리는 칼레에서 타무까지 대략 100개 정도의 크고 작은 교량을 통과했는데 이곳을 자주 오가는 안만호 박사님에 따르면 이 다리는 2차 대전 말기에 미얀마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일본군을 피해 인도 임팔 지역으로 후퇴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만든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80년 동안 버텨온 교량을 만든 영국이 놀랍고 이 낡고 부서진 다리를 여전히 사용 중인 미얀마는 더욱 놀랍다.


이번 타무 지역 봉사의 하이라이트는 장학생 교육이었다. 우리 빛과나눔장학회에서는 고아원을 포함하여 타무 지역 18개 공립 중·고등학교 장학생 100명을 선발하여 꿈과 희망 캠프를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장학생 교육에는 가재산 회장님, 장동익 교수님, 안만호 박사님이 최상의 콘텐츠를 준비하여 교육과 훈련을 동시에 진행했다.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들을 리더로 세우는 일이 빛과나눔장학회의 목표다. 안만호 박사님의 감사를 하면 어떤 기적이 오는지를 옆 친구에게, 부모님께, 선생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실습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을 감사 노트에 기록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감사한다.


가재산 회장님의 꿈을 어떻게 실행해 옮길 것인지를 꿈 일지를 적어보고 5년 후 내 모습, 10년 후 내 모습을 작성하고 꿈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적어 옆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몇몇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 앞에서 발표도 했다.


꿈이란 좋은 습관을 내 몸에 장착시키는 것이라는 가 회장님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귀에 메아리치고 있다. 어떻게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지속적인 훈련이며 지속적인 연습이란다.


장동익 교수님의 ‘21세기 세상은 스마트 소통하는 세상이다라는 강의를 통해 스마트폰 온라인 소통법, 온라인 교육법, 온라인 활용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스마트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신기원이다. 장동익 교수님은 다음날 출발시간 직전까지 교사들에게 스마트 교육을 해달라는 앙코르 요청을 받아 성실하게 교육에 임하셨다.


세상을 향해 꿈 날개를 펼치는 장학생들이 앞으로 만들어낼 세상이 기대된다. 교육을 마치고 우리 팀원들이 한 줄로 서서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특히 타무지역 교육부 고위 인사께서 이번 장학금으로 학업을 그만두어야만 했던 학생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자는 빛과나눔장학회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그러면 내 꿈은 무엇일까, 미얀마 장학생과 나누는 이 시간, 무언가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듯 다가온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학생들에게 꿈에 도전하도록 꿈을 키워주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미얀마 캠프 길에서 내가 찾아야 될 답일 것 같다.


고아원 천사들

 

우리가 미얀마를 방문하여 처음으로 방문하고 봉사를 시작한 곳이 타무 그레이스 고아원이었다. 우리는 7년 동안 1년에 두어 번 그레이스 고아원에 방문하여 쌀도 사주고, 컴퓨터 교육도 하고, 한글도 가르치고, 음악도 가르치고, 그림도 가르쳤다.


이번에는 고아원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한국요리를 대접하기로 했다. 이번에 오신 권사님 두 분이 요리박사님들이다. 한국식 피자인 부침개를 만들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올 40명의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시장에 가서 부침개 재료를 구입했다. 감자, 양파, 계란, 밀가루, 호박, 일반적인 미얀마 야채는 우리나라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부침개를 만들 프라이팬이 없다. 주방을 살펴보니 밥은 쪄서 먹고 야채는 삶아서 먹기 때문에 튀김 도구가 없다.


어디 쓸 만한 것 없는가 하여 동네 주변을 돌아보니 인도 요리를 하는 가게 한 곳에 솥뚜껑을 뒤집어서 요리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요리 도구를 사진 찍어와 똑같은 것을 구해달라고 우리의 통역자이고 고아원 총무인 팔룬에게 부탁을 했다.


팔룬은 다행히 얼마 후에 녹슨 솥뚜껑을 구해왔다. 녹을 닦은 후에 본격적인 부침개 만들기를 시작한다.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지 얼마 후 학교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와 도와주겠다고 달라붙는다. 아이들과 소통은 핸드폰 번역기를 통해서 시도한다.


엄마라고 불러라,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저는요, 저는 삐삐, 저는 람누, 친딘, 매기, 화누, 세미탕, 토미눈, 고고.”


열심히 자기 이름을 알린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사이에 부침개는 노릇노릇 익어간다. 기름 냄새에 꼬맹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부침개는 지금이 제일 맛있는 때다. 애들아, 접시 가지고 와라.”


부침개 100장을 예상하고 재료를 구입했는데 미리 먹는 게 반 이상이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잔칫상이 빈약하다. 한국 엄마가 미안하다. 좀 더 넉넉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엄마 손이 너무 작아서 미안하구나. 다음에는 잔칫상을 풍족하게 준비할게. 우리 아이들. 미안한 마음으로 반성을 한다.


이렇게 며칠이 순간에 지나간다. 미얀마 캠프 멤버들은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 칼레대학교육팀, 미얀마 교사들을 위한 한국어교육팀, 다야공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색채교육팀, 페닐신학교와 지역 목회자를 위한 리더십교육팀, 그레이스 고아원팀들이다.

 

다야공 천사들

 

마지막 출발일 아침, 일찍 다야공 초등학교 천사들을 만나기 위해 툭툭이 택시 3대를 이용하여 1시간 정도를 산길, 들길, 시냇길을 지나간다. 비포장도로를 펄썩펄썩 뛰어가는 툭툭이의 몸살에 우리들 엉덩이에서는 불이 난다.


산 넘고 고개를 넘고 들을 지나 개울을 건너 도착한 다야공은 미얀마 소수 부족인 쿠키족이 사는 인도 국경 마을이다. 아이들 27명에 교사 2명이 살고 있다. 우리는 이 마을이 처음 생기면서부터 오가기 시작했다. 1년에 두세 차례 만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수줍어하고 천진난만하다. 수줍음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다가와 매달린다.



다야공 초등학교에서 색채교육팀이 4일 동안 그리기 교육을 했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서로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놓고 신기해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사는 이곳은 우리들의 꿈나라며 그들의 천국이다. 아이들을 만난 일행들, 특별히 60대와 70대 사나이들의 눈시울이 감동으로 그렁그렁 붉어진다. 시니어들의 어린 시절 콩나물 교실, 2부제 교실이 생각났을까.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에 봉사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우리가 최고급 봉사를 받는다.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행복의 무게가 너무 크고 깊고 넓다. 살그머니 한 친구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는다. 이 온기에 한참을 꼬맹이를 안아주며 눈물을 감춘다. 돌아서는 일행을 보며 다야공 선생님은 돌아서서 눈물 흘린다.


벌써 가세요?”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언제 또 오세요?”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몸짓으로, 눈짓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다음을 약속한다. 이렇게 미얀마에서 떠날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다가온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이곳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위한다고 온 길인데 돌아보니 나를 위한 시간이다. 내가 기쁘고 벅차며 감사하다. 나는 단지 작은 시간을 내었을 뿐인데 미얀마 천사들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꿈과 살아갈 희망을 한 아름 안겨준다.


미얀마가 지금은 가난한 나라이지만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았던 잘 사는 나라였다. 미얀마는 6·25 전쟁 때 당시로서는 엄청난 양의 쌀 5만 톤을 한국에 원조했다. 미얀마에서 원조해준 쌀의 일부가 한국의 고아들을 먹이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2014년 미얀마의 OBS라는 고아원에서 도움을 요청해 와서 한국사람 5명이 고아원에 갔다가 지금까지 그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목격한 미얀마는 여전히 가난한 중에도 이웃들을 돌보는 나라다.


미얀마에서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에는 큼직한 물통과 물컵이 비치된 장소가 있어 신기해서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누구든지 이곳을 지나가는 길손들이 목을 축이고 쉬어가 라는 아름다운 배려다. 이런 물통이 미얀마 전국 어디에 가도 가정집이나 식당에 비치되어 있다.


그뿐 아니다. 미얀마에서는 동네 골목길이나 시장 거리의 나무 또는 벽에 벼 이삭을 한 움큼씩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봤을 때 호기심으로 관찰했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낟알을 쪼아 먹는 게 보였다. 현지 사람에게 물어보니 새밥이라고 한다.


새에게 모이를 주기 위해 벼 이삭을 묶어 나뭇가지나 담벼락에 달아주는 수고를 한 이런 것들이 세계 최빈국인 미얀마 이지만 팍팍한 삶속에서도 기부자 수만큼은 부탄과 함께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비결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목마른 길손에게 물 한 컵으로 다시 힘을 내서 출발하는 소망을 주고 처마 밑에 벼이삭을 걸어놓아 배고픈 새들에게 희망을 주듯이 코로나 속에서 미얀마를 다녀온 19명의 시니어들의 발걸음이 지금은 가난한 나라 미얀마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리라.

 

[약력 : 오순옥]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 대표


-청소년인성진흥협회 본부장


-누리나래교육원 원장


-전문인선교사협회 대표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