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사건 실체해부①] 어떻게 '전세사기' 당했나

2022.12.29 10:52:27

건축주와 분양팀의 수요를 노리면서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기 자본 거의 없이 마구잡이로 빌라 구매…세입자 내막 몰라
제2, 제3의 빌라왕 속출, "나도 빌라왕 피해자 될 수 있다" 우려 팽배

지난 10월, 주택 1139채 보유한 임대업자 김모씨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빌라왕'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다. 한 명이 1000채 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40대 초반인 그가 모텔에서 급작스럽게 숨졌다는 것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수백 명에 달하는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현실은 비단 남의 일 만은 아닐 수도 있다. 죽은 빌라왕 김모씨의 사건이 불거지자, 수도권에서만 빌라를 1000채 정도 가진 사람만 4명, 300채 이상은 16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는 추후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급증시켰다. 이에 지금도 깊은 한숨으로 잠 못 이룰 빌라왕 세입자들과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제2, 제3의 빌라왕 피해자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세사기 수법부터 정부대책에 이르기까지 <KJTimes>가 꼼꼼하게 짚어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KJtimes=신현희 기자] 빌라왕은 소위 '부동산 갭 투자'를 통해 주택 1139채를 보유할 수 있었다. 갭 투자란 실제 매매가 되는 부동산의 가격과 전세 가격과의 차이가 적은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을 전세를 끼고 매입해 그 시세차익을 얻는 부동산 투자방식을 말한다. 


실제 빌라왕 피해자인 A씨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계약했다. 74㎡에 전세보증금 2억1500만원인 이 오피스텔은 전세와 매매가 동시에 이뤄졌고, 집을 매입한 사람이 빌라왕 김씨였다. 김씨는 전세금 2억15000만원으로 이 오피스텔을 샀다. 자기 돈 한 푼 없이 집을 산 셈이다. 

◆ 이들은 왜 ‘전세사기’를 당했나

김씨는 이런 수법으로 지난 2019년부터 2년여 동안 1139채의 빌라를 사들였다. 신축 빌라를 파는데 집주인 명의가 필요했던 건축주와 분양팀의 수요를 노리면서,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2년여 뒤 계약을 종료하거나 연장하려는 세입자들이 속출하자 사기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독촉이 이어지자 김씨는 그때야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너무 많이 나와 신용불량자가 됐고 그 집도 압류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문자를 남겼다.

자기 자본 거의 없이 마구잡이로 집을 사들였지만 그는 결국 종부세 62억원 체납으로 집은 압류상태였고, 자신은 모텔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씨가 숨지면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들조차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워졌다. 보증이 이행되려면 임차인들이 김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김씨는 사망한 상태로, 상속인이 결정되어야 계약 해지 통보가 가능하다. 

부동산업계 한 전 문가는 "현재 김씨는 62억원의 종부세 체납으로 인해 소유한 많은 주택이 압류된 상태로 이에 따라 이들 주택을 모두 처분한다고 해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과연 상속자라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보도에 의하면, 김씨의 아버지도 “아들이 진 다른 빚 때문에 살고 있는 집도 결국 경매에 넘어갔다”고 한다.

◆ 피해자 중 보증보험 가입자 54%, 나머지는?

지난 12월 22일, 국토교통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한법률구조공단 등과 함께 '빌라왕 피해 임차인 설명회'를 열었다. 피해자 100여 명이 현장에 참석했고 비대면 중계에도 270여 명이 모였다.

국토부는 이날 전세자금대출을 8~12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 발생 시 기존 HUG는 2개월, 주금공은 6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던 것에 6개월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유는 지난 2021년 8월 18일부터 모든 주택임대사업자들의 임대차보증보험 의무 가입이 시행됐지만 빌라왕 피해자 중 HUG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614명(54%)에 불과하다는데 있다. 
 
김씨는 '자신이 등록 주택임대사업자이기 때문에 보증보험에 의무 가입한다'는 말과 특약시항에 기입하는 식으로 세입자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반면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직접 경매를 통해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고 특히 김씨의 사망으로 경매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이어 "이들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의 사회초년생이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이 보내야 할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 뿐만 아니다"며 "따라서 지금도 어디선가 불거지고 있는 제2, 제3의 빌라왕 사건에 대해 정부와 HUG, 그리고 관련 은행권의 발 빠른 대처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다음 편에는 'HUG와 정부대책.'이 이어집니다>


신현희 기자 shh@kj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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