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의 ‘다음(Next)’을 열기 위해 SK가 풀어갈 과제로 △차세대 AI 반도체(칩) 성능을 뒷받침할 안정적인 메모리 반도체 공급 △미래 AI 인프라 구축 △AI 과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AI 활용을 꼽았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AI 수요에 제때 대응하기 위한 SK의 청사진으로 ‘가장 효율적인 AI 설루션 제공 기업’을 제시하며 ‘고객(파트너사)과 함께’ 내일의 AI 미래를 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최 회장은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Summit(서밋) 2025’ 기조연설에서 AI의 다음을 위해 ‘지금(Now)’ 해야 할 노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SK AI 서밋은 반도체, 에너지설루션, AI 데이터센터, 에이전트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 걸친 SK그룹의 AI 경쟁력을 국내외 기업과 학계에 소개하고, 글로벌 빅테크와 최신 AI 동향을 공유하며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행사다. 지난해 온오프라인으로 3만 명가량 참여한 국내 최대 AI 행사다. 올해는 AI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의 ‘AI Now & Next’를 주제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최 회장은 올해도 기조연설에 나서 지난 1년간 AI 생태계 발전을 위한 SK의 노력을 돌아보고 앞으로 혁신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주 경북 경주시에서 열렸던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최고경영자(CEO) Summit(서밋)을 돌아보며 “AI가 가장 큰 주제였다. AI가 각국의 산업과 경제, 개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최근 AI 업계의 큰 화두로 ‘폭발적 수요에 대비한 AI 인프라 투자 증가’를 꼽았다. 올해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 금액이 6000억달러(약 800조원)에 이르며 지난 5년간 연평균 24%씩 성장했으나 OpenAI와 Meta 등 각 빅테크 기업들이 밝힌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이를 웃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과거 에너지, 석유처럼 안정된 수요 예측 모델이 없어 얼마나 큰 폭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AI 수요 증가의 근거로 △추론(inference)의 본격화 △기업 간 거래(B2B)의 AI 도입 △에이전트의 등장 △국가 간 소버린 AI(주권형 AI) 경쟁을 꼽았다. AI가 본격적으로 추론을 하게 되면서 주어진 질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답에 대한 검증을 반복해 결과적으로 더 나은 답변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컴퓨팅(연산)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AI 적용 확대, 사람의 개입 없이 365일 24시간 스스로 임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의 확산 또한 마찬가지다. 최 회장은 “모든 기업이 AI가 사업에 적용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보며 경쟁을 위해 AI를 도입하고 있고, 이 과정에 비용(cost)은 고려되지 않아 B2B AI 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으로 확산한 소버린 AI 경쟁은 AI 투자 주체로 기업에 이어 국가가 더해지며 AI 수요를 더 키울 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 회장은 이 같은 AI 수요 증가에 대응할 SK의 역할로 ‘가장 효율적인 AI 설루션 제공’을 꼽았다. 지난해 최 회장이 SK AI 서밋에서 밝혔던 AI 확산의 걸림돌인 ‘수요, 공급의 불일치(병목 현상)’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SK가 집중할 분야로 △메모리 반도체 △AI 인프라 △AI 활용을 제시하며 “AI는 스킬(skill) 경쟁이 아닌 효율 경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율적인 AI 설루션은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AI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제시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한 AI 칩 성능이 매년 향상되고 있지만 정작 AI 컴퓨팅을 뒷받침할 메모리 반도체 공급 속도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업계 상황을 전했다. 최 회장은 “공급이 병목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많은 기업으로부터 메모리 반도체 공급 요청을 받고 있어서 이걸 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며 “고객에게 책임지고 공급하는 것이 고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OpenAI로부터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월 90만 장씩 공급해달라고 요청받은 걸 예로 들었다. 반도체 제조공장 입지를 두고 최근 지정학적 요인 또한 고려되는 상황도 덧붙였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가 HBM 증산을 위해 내년 중 본격적으로 가동할 청주캠퍼스 M15X팹(Fab, 반도체 제조시설), 2027년 본격 가동할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소개하며 “AI 메모리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겠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팹 한 곳당 청주캠퍼스 M15X 6개가 들어간다”며 “용인반도체클러스터 4개 팹이 완성되면 청주캠퍼스 M15X 팹 24개가 지어지는 효과”라고 충분한 양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의지를 강조했다. 증산뿐 아니라 고용량 및 가격 경쟁력을 갖춘 낸드플래시메모리 콘셉트의 제품 개발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성능 AI 칩과 메모리 반도체가 온전히 성능을 발휘하도록 뒷받침할 최적의 AI 인프라 또한 SK가 가야 할 길로 꼽았다. 최 회장은 “SK는 스스로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반도체부터 전력, 에너지설루션까지 제공해 가장 효율적인 AI 인프라 설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AI 인프라 구조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SK텔레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8월 서울 구로구에 구축한 국내 최대 AI 컴퓨팅 클러스터 ‘해인(海印, Haein)’,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진행 중인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OpenAI와 지난달 발표한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등을 이상적인 AI 인프라를 모색하는 SK의 여정으로 소개했다.
이어서 최 회장은 “AI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AI”라며 “메모리 반도체 생산 속도를 높이고 데이터센터 운영 자동화와 가상화에 AI 적용을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와 만나 의견을 같이한 ‘AI 팩토리’ 협력을 바탕으로 메모리 반도체 성능 개선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이를 위해 엔비디아의 GPU와 디지털 트윈 설루션을 활용한 가상 공장을 만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정을 완전히 자율화할 계획이다.
또한 SK텔레콤의 업무용 AI 에이전트 ‘에이닷 비즈’처럼 실제 업무에 활용 가능한 AI 도구(툴)를 개발해 선제적으로 사용하며, SK 외부에서도 활용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최 회장은 기조연설 말미에 SK와 AI 생태계를 꾸려가는 국내외 파트너사들을 화면에 소개하며 “AI는 혼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SK AI 전략의 핵심은 파트너와 공동으로 설루션을 설계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라며 “SK는 파트너와 경쟁하지 않고 빅테크와 정부, 스타트업 등 여러 파트너와 AI 사업 기회를 만들어 최고 효율의 AI 설루션을 찾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한편, 최 회장 기조연설 중에는 아마존의 앤디 제시(Andy Jassy) CEO, OpenAI 샘 올트먼(Sam Altman) CEO가 보내온 영상 메시지가 상영돼 SK와의 AI 데이터센터, AI 컴퓨팅 분야 협력 성과 및 앞으로의 의지가 공개됐다. 제시 CEO는 SK와 아마존웹서비스(AWS)의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협업을 평가하며 “반도체 성능 개선이 AI 인프라 개선의 필수로 꼽히는 가운데 SK는 아마존의 대표적인 AI 솔루션 확장 파트너”라고 말했다. 올트먼 CEO도 “각 개인이 지능형 AI 비서를 계속 활용하려면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SK와 같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에 이어 정재헌 SK텔레콤 CEO는 SK의 AI 인프라 역량을,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AI 컴퓨팅 설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는 SK하이닉스의 미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엔비디아에서 양자컴퓨팅 분야를 이끌고 있는 팀 코스타(Tim Costa) 반도체엔지니어링총괄은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및 제조를 위한 AI 슈퍼컴퓨팅’에 대해 발표해 제조 AI 구현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반도체 개발 경험을 나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AI 에이전트’의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벤 만(Ben Mann) 앤트로픽(Anthropic) 공동 창업자는 4일 오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구축’에 대해 국내 AI 업계와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올해 SK AI 서밋은 지난해 SK그룹 멤버사 중심으로 꾸려졌던 전시를 스타트업, 학계, 해외 기업 등으로 참여 범위를 넓혀 규모와 다양성을 키웠다. AWS, 엔비디아,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 빅테크가 각자의 AI 데이터센터, AI 에이전트, AI 팩토리 등 AI 기술을 국내에 직접 선보여 참석자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부대행사로 SK텔레콤, 엔트로픽, 콕스웨이브(Coxwave)가 공동 주관한 AI 개발자 행사 ‘SK AI 서밋 2025 클로드 코드 빌더 해커톤(Claude Code Builder Hackathon)’이 3일 열려 벤 만 엔트로픽 공동 창업자가 직접 참가자들과 AI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SK텔레콤은 3~4일 코딩대회 ‘청소년 행복AI코딩챌린지’를 개최해 장애 청소년들이 AI 역량을 키워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응원했다. 청소년 행복AI코딩챌린지는 1999년 시작해 올해 26회째를 맞은 국내 대표 장애 청소년 대상 정보기술(IT) 행사다.
SK그룹은 SK AI 서밋이 국내 최대 AI 콘퍼런스로서 SK는 물론 한국의 AI 역량을 글로벌 AI 업계와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거듭났다며, SK는 신뢰 기반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파트너들과 ‘AI 3대 강국’ 전략을 뒷받침할 반도체, 인프라, 모델 등 ‘한국형 AI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