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 최근 서울 마포 한 식당에서 인근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오찬을 했다. 그 자리의 화두는 ‘주식투자’였다.
30대 중반의 A 과장은 “예전에는 출근하자마자 주식 앱부터 켰는데 지금은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다”고 말을 꺼냈다. 지난 2020년 처음 증권계좌를 만들었다는 그는 삼성전자와 미국 기술주를 사들이며 ‘나도 이제 투자자’라는 기대에 부풀었다고 한다.
당시는 코로나 19로 주가가 폭락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몇 차례의 급락을 겪은 뒤 거래를 멈췄고 지금도 계좌는 남아 있지만 사실상 잠들어 있다고 한다.
◆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옆자리에 있던 B 부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4년 전 증권계좌를 개설했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것 같아 증권 앱을 아직 지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실이 무서워서 그만둔 게 아니라 남들이 사니까 따라 샀던 제 자신이 더 후회됐다고 회고했다.
반면 같이 동석했던 C 차장은 정반대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때 손실을 보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했다며 지금은 개별 종목보다 ETF를 매달 적립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 얘기들을 들으면서 같은 시장을 경험했지만 5년은 누군가에게는 ‘투자 포기’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자 습관’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때 계좌를 만든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졌다.
회상해 보면 2020년 봄, 증권사 창구는 북적였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은 앞다퉈 계좌를 만들었다. ‘동학개미’라는 이름은 어느새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까지 등장하며 대한민국은 투자 열풍에 휩싸였다.
당시에는 투자하지 않는 사람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장인은 점심시간마다 휴대전화로 주가를 확인했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종목 추천과 수익 인증으로 넘쳐났다. ‘영끌’과 ‘빚투’는 하나의 사회현상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지금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투자자예탁금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거래활동 계좌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있다. 증권사를 찾는 고객들의 질문이 달라졌다는 게 그것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 증권사 PB들에게 확인해 봤다. 이들은 예전에는 지금 사도 되느냐, 어떤 종목이 오르느냐를 묻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ETF를 어떻게 모아야 하느냐, 배당을 고려한 장기 포트폴리오를 짜고 싶다는 상담이 늘었다고 전했다.
시장도 달라졌지만 투자자도 달라지고 있었다. 한국거래소의 거래대금과 투자자별 거래 비중, 한국예탁결제원의 해외주식 보관금액, 금융투자협회의 투자자예탁금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시장의 흐름을 보여준다.
◆ “살아남은 투자자는 원칙을 배웠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2021년 말 67조5307억원에서 2022년 말 46조4484억원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투자 열풍이 금리 인상과 증시 침체를 거치며 한풀 꺾인 영향이다.
이후 투자자예탁금은 2023년 말 52조7537억원, 2024년 말 54조2426억원으로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2025년 말에는 87조829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증시 반등과 함께 시장으로 유입되는 대기자금이 다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2021년 말 23조886억원이던 잔액은 2022년 말 16조5186억원으로 감소했다. 2023년 말 17조5584억원을 기록한 뒤 2024년 말에는 15조8170억원까지 줄었다. 이후 2025년 말에는 27조2864억원으로 다시 증가하며 개인투자자의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숫자만 놓고 보면 개인투자자들은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모습은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던 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장을 떠났고 남은 투자자들은 ETF와 배당주, 장기 분산투자 등 보다 안정적인 투자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숫자는 왜 누군가는 시장을 떠났고,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보다 사람이다. 계좌를 방치한 투자자, 손실을 딛고 투자 원칙을 세운 투자자, 지금도 미국 증시가 열리는 새벽을 기다리는 서학개미.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 붙이면 지난 5년의 한국 자본시장이 보인다.
결국 지난 5년은 주가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투자에 몰릴 수밖에 없었는지, 개인은 시장에서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보여준 시간이었던 것이다.
‘동학개미’는 끝난 유행어가 아니다. 그 이름 뒤에는 아직도 수많은 계좌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사람은 ‘동학개미’가 아니라, 그 열풍을 지나 오늘도 조용히 시장에 남아 있는 개인투자자들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