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은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올 하반기 경쟁정책의 방향을 '독과점 구조개혁'에 맞췄다.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시장 구조 자체를 손질하겠다는 의지다. 반복적인 담합 기업에는 등록취소와 영업정지까지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보고, AI·플랫폼 시장에 대한 새로운 경쟁 규율을 마련하는 한편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와 편법 승계 감시도 대폭 강화한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6년 하반기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독과점 구조개혁과 공정성장 기반 구축'을 하반기 핵심 정책목표로 제시했다.
공정위는 상반기 동안 담합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대응, 경제적 약자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민생분야 공정거래질서 확립 △경제주체 간 힘의 불균형 완화 △디지털 시장 혁신 생태계 조성 △대기업집단 경제력 집중 완화 등 네 축을 중심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계획은 단순한 사건 처리보다 경쟁을 제한하는 시장 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플랫폼 경제 확산과 AI 산업 성장, 재벌 지배구조 변화 등 최근 산업환경 변화를 반영한 제도 정비가 대거 포함됐다. 최근 주요 경쟁당국들도 디지털 플랫폼 독점과 AI 시장 경쟁환경을 핵심 정책 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은 글로벌 경쟁정책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반복 담합 퇴출부터 AI 플랫폼 감시까지…'시장 구조' 손본다
가장 강도가 높은 변화는 담합 규제다. 공정위는 화학제품, 페인트, 석유제품 담합을 집중 점검하고 복지시설 식자재 납품 과정의 리베이트 등 민생과 직결된 불공정행위를 신속히 조사하기로 했다.
특히 반복적으로 담합을 저지른 사업자에 대해서는 등록취소와 영업정지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자진신고 감면(리니언시) 혜택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담합 사건에는 지분매각과 영업양도 등 구조적 시정조치도 도입해 독과점 시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농산물 유통과 방위산업 등 경쟁이 제한된 분야에서는 지난 10년간 추진된 규제개선 과제를 전수 점검해 경쟁제한적 규제도 손질한다.
소비자 보호도 대폭 강화된다. 소비자 단체소송의 법원 허가제를 폐지하고 예방적 금지청구를 허용하는 한편, 자료제출명령제를 확대해 피해 기업의 입증 부담을 줄인다. 소비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피해구제 기금을 신설하고 분쟁조정통합법도 제정할 예정이다.
생활밀착형 분야에서는 예식장 식대 계약 시 신랑·신부에게 각각 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상조회사의 자산운용과 선수금 의무보전 비율도 점검한다.
철도와 항공 분야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 코레일-SR 통합 이후 운임과 공급좌석 등 소비자 권익 보호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경제적 약자의 협상력 확대도 눈에 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단체협상을 담합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가맹점주, 하도급업체, 대리점주의 단체협의권도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할 계획이다.
조선·플랜트·전력 등 국가기반산업에서는 불공정 하도급을 집중 점검하고,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비용을 하도급업체에 전가하는 행위도 엄정 제재한다.
플랫폼 시장 규율 역시 한층 강화된다. 배달앱의 최혜대우 요구와 끼워팔기,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소비자 기만행위, 앱마켓 사업자의 불공정거래 등을 집중 감시하고, 챗GPT 등 AI 서비스 시장의 경쟁상황과 거래구조를 분석한 정책보고서를 발간한다.
플랫폼 3대 분야인 오픈마켓·배달·숙박에 대해서는 수수료와 정산기간, 입점업체 피해 현황을 심층 조사해 향후 입법 논의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AI를 활용한 위해제품 감시 대상 플랫폼도 기존 8개에서 11개로 확대한다.
재벌 규율도 강화된다. 공정위는 식품·물류·의약품, 건물관리·경비·건설자재, 대부업 등 민생 분야에서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를 집중 감시하고 총수 2세 회사에 대한 사업기회 제공과 무상 신용보강 등을 통한 편법 승계를 차단하기로 했다. 계열사 누락 시 총수 개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사익편취 규제에서는 발행주식 총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해 규제의 실효성을 높인다.
또 지주회사 자·손자회사 의무지분율도 신규 중복상장 시 상장회사까지 50%를 적용하도록 제도를 보완한다.
공정거래 집행체계 역시 손질된다. 전속고발제를 개편해 일정 수 이상의 국민과 중앙행정기관, 광역 지방정부에도 직접 고발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지방정부에는 하도급·가맹·대리점·표시광고 분야 일부 조사·처분권을 부여한다.
과징금 상한도 대폭 높이고 기업 규모를 반영하는 새로운 과징금 체계도 마련한다.
공정위는 인력 확충도 병행한다. 3월 시행된 167명 증원을 9월까지 마무리하고, 10월 시행 예정인 237명 규모의 추가 증원도 신속히 완료해 민생 담합과 디지털 시장 등 복합 사건 대응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정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단순한 사후 제재를 넘어 시장 구조와 디지털 경쟁환경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다만 플랫폼 규제와 기업결합 심사 강화, 반복 담합에 대한 구조적 제재 등은 산업계의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는 만큼 향후 입법 과정과 세부 시행기준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