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응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울산 ‘샤힌프로젝트’의 가동 임박으로 범용 플라스틱 생산능력이 오히려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폴리에틸렌(PE) 등 국내 주요 제품의 가동률이 60%대에 머무는 상황에서 대형 증설이 강행될 경우, 수급 불균형이 가중돼 산업 전반의 가동률과 수익성이 한층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후솔루션은 지난 3일 이 같은 분석을 담은 ‘감산 시대에 증설? 한국 석유화학의 위험한 베팅’ 이슈브리프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관련 업계는 지난해부터 나프타분해시설(NCC) 생산능력을 에틸렌 기준 270만~370만톤가량 감축하고, 대산·여수 등 주요 단지의 설비 통합을 추진해 왔다.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특수화학품)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 목적이다.
그러나 내년 초 울산 샤힌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연간 18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이 추가된다. 이에 따라 국내 폴리에틸렌 생산능력 역시 기존 840만톤에서 970만톤 이상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기후솔루션은 이를 두고 "구조조정으로 줄이려던 범용 제품 생산능력을 다른 한편에서 다시 늘리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PE 가동률 60%선 추락… “문제는 생산 부족 아닌 수요 정체와 공급 과잉”
가장 큰 문제는 늘어나는 물량을 소화할 시장 수요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국내 폴리에틸렌 수출은 정체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고 내수 공급은 오히려 감소했다. 그 결과 국내 폴리에틸렌 생산설비 가동률은 세계 평균(81%)을 크게 밑도는 6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기후솔루션은 이러한 지표가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 본질이 '생산능력 부족'이 아닌 '수요 정체와 공급과잉'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정된 수요를 놓고 설비 경쟁만 치열해지면 결국 전체 기업의 가동률과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대외 여건도 악재가 겹쳤다.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은 자국 내 설비 확충을 넘어 글로벌 수출 시장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4년 5500만 톤에서 2028년 8000만 톤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과거의 핵심 고객이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변모한 셈이다.
미국 역시 저렴한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 생산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미국의 하루 평균 에탄 생산량은 2014년 100만 배럴에서 2024년 280만 배럴로 10년 만에 3배 가량 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D)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 등 환경 규제 강화까지 더해져 플라스틱 신제 수요 감축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신규 증설의 고용 창출 효과 불확실… 범용 구조 탈피해야”
샤힌프로젝트가 가져올 고용 유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신규 설비가 들어서는 울산 등 특정 지역에서는 일시적인 고용 창출이 일어날 수 있지만, 설비 감축과 폐쇄가 진행되는 타 지역은 경쟁 심화로 더 큰 고용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수익성이 저하된 범용 플라스틱에 집중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고용 불안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산업전환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동향 및 고용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체들은 매출과 고용 지표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도윤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만으로는 석유화학 업계의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현재의 고용 둔화는 설비 부족이 아니라 글로벌 수요 정체와 범용 제품의 수익성 악화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신규 범용 증설 멈추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전환 집중해야”
기후솔루션은 신규 범용 설비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재검토하고, 기존 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의 사업 전환에 정책·재정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스페셜티 제품에 집중한 글로벌 기업들의 총주주수익률(TSR) 중앙값은 55%로, 범용 제품 중심 기업(17%)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였다.
기후솔루션은 사업 전환이 지체될수록 범용 중심의 위기 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며, 구조조정 이후 생산능력이 다시 비대해지는 것을 막을 실효성 있는 정책 장치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김도윤 연구원은 “지금 석유화학 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설비'가 아닌 '더 나은 전환'”이라며 “감산을 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증설을 허용하는 정책적 엇박자가 지속된다면, 구조조정의 성과는 물론 그간 기업과 노동자가 감내해 온 노력마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쓰오일 "TC2C 신기술로 원가 경쟁력 확보…고부가 전환 돕는 핵심 인프라"
이 같은 공급과잉 우려 속에 에쓰오일(S-Oil)측은 샤힌프로젝트가 단순한 범용 설비 증설이 아닌,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입장이다.
에쓰오일은 세계 최초로 상업 적용되는 TC2C(원유를 석유화학 원료로 직접 전환하는 기술) 공정과 고효율 설비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탄소 배출량도 기존 대비 2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유·석유화학 통합 생산체계를 통해 원료 유연성을 높이고, 울산 산단 내 다운스트림 기업에 지선 배관망으로 기초유분을 공급해 국내 밸류체인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중국과 중동이 대규모 통합설비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기초유분의 원가 경쟁력 없이는 스페셜티 제품도 시장성을 갖추기 어렵다"며 "샤힌프로젝트는 과잉설비 감축과 함께 고효율·저탄소 설비를 확보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