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은 ‘해봤어 정신’이다. 이는 사업 추진을 계획 시 실무자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때 정 명예회장이 늘 반문했던 “이봐, 해보긴 해봤어?”라는 말에서 유래된 정신이다.
도전과 창조, 추진력으로 기업을 일군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 정신’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중 하나는 서산간척지 개발이다. 그는 1980년 초 서산 앞바다의 간척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20만톤 이상의 돌이 있어야만 물을 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 사업 자체에 회의를 나타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도전해보기 전에는 불가능함이란 없었던 정 명예회장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밀물과 썰물의 물살을 막기 위해 폐유조선을 침하시켜 물줄기를 감소시킨 다음 일시에 토사를 대량 투하해 제방과 제방 사이를 막는다는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내놓은 것. 이 공법으로 현대건설은 계획 공기 45개월을 35개월이나 단축해 9개월 만에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무려 280억원의 공사비도 줄였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던 6.25전쟁 와중에도 정 명예회장의 창조정신은 빛을 발했다.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1952년 12월 당시, 정 명예회장은 미군관련 공사 수주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 명예회장은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새파란 잔디로 덮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각국 유엔사절이 내한해 참배할 계획인데 흙으로만 겨우 덮어놓은 묘지를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던 것.
공사에 허락된 시간은 겨우 5일뿐이었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특유의 아이디어로 공사를 해결했다. 그는 미군이 요구하는 것은 잔디가 아니라 유엔사절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파란풀을 원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낙동강변에 있던 보리를 모두 옮겨 심었다. 이에 감동한 미군은 정 명예회장에게 실제 공사비의 3배를 지급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500원짜리 지폐로 선박을 수주한 일화도 전설로 남아있다. 1971년 현대중공업 창업 당시 정 명예회장은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에 차관을 구하는 과정에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전인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 단지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었을 뿐 그 잠재력은 그대로 갖고 있다”는 말로 26만톤 짜리 2척을 수주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또 1976년에는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9억3000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며 중동 진출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소양강댐 준공도 정 명예회장이 가진 불굴의 추진력을 보여준다. 1967년 당시 소양강댐은 콘크리트댐으로 설계하도록 돼 있었다. 국내엔 댐기술이 없어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빌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막대한 물량의 시멘트나 철근 등 수입 자재를 쓰는 대신 주변에 널려있는 자갈과 모래를 이용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란 결론을 내렸고 흙과 모래, 자갈을 사용해 사력(砂礫)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결국 정 명예회장의 아이디어로 소양강댐 건설비용을 30%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거짓말처럼 보이는 정 명예회장의 숱한 일화는 전설로 남아 현대그룹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도전정신과 창의적 기업가 정신은 한국 경제의 근간으로 남아 있다.
<ky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