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의 창업자 고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은 1906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의 뜻을 따라 7세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조 회장은 신학문의 갈증으로 17세가 되어서야 보통학교 과정에 진학한다. 이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늦은 인생길이 펼쳐진다.
19세에 중학교에 입학한 조 회장은 30세가 되어서야 일본 호세이대학 독일경제학과를 졸업한다. 뒤늦은 대학 졸업 후 조 회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1945년까지 9년 동안 군북금융조합장을 지냈다.
해방과 함께 상경한 조 회장은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고 이 회장의 친형인 이병각씨와 친구였던 조 회장은 삼성물산에 1000만 환을 투자하면서 삼성의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이 회장과 조 회장은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을 함께 설립하면서 삼성의 틀을 다져나갔다. 1960년에는 제일제당 사장에까지 취임했지만 1962년 9월 돌연 15년간의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삼성을 떠났다.
이때 조 회장의 나이는 56세. 보통사람이라면 정년퇴직을 하고 노년을 준비할 나이지만 조 회장은 효성물산을 창업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무려 60여개의 업종 중에서 주력업종을 고민했던 조 회장은 나일론산업으로 방향을 정하고 울산에 동양나이론 공장을 지었다.
이후 동양나이론은 불과 3~4년 사이 선두기업이었던 한일나이론을 흡수하는 등 일취월장해 최대 나일론기업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조 회장의 동생 조성제씨가 운영하던 대전피혁과 삼성에서 분배받은 한국타이어를 계열사로 키우며 그룹을 조금씩 확장해나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지만 누구보다 빨리 회사의 기틀을 잡아나간 조 회장은 1970년대 중반에는 국내 5대 기업으로 급부상하며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남들보다 한발씩 늦은 인생항로로 인해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의 ‘만우’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조 회장. 그러나 그가 늦었지만 어리석지는 않은 올곧은 경영인이라는 사실에 반박할 이는 아무도 없다.
<kj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