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세계경제포럼(WEF)은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를 기후변화와 함께 향후 10년 인류가 마주한 3대 위기로 꼽았다.
기후변화와 함께 과도한 착취와 개발로 지구의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생물다양성 위기 해결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2022년 생물다양성협약(CBD) 총회에서 ‘자연을 위한 파리협정’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체결했다.
GBF 약속에 따라 한국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동원해야 하는 ‘자연금융’(nature finance) 규모를 기후솔루션이 추산한 결과 2030년 기준 5조 5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당 연도 공공이 지출할 것으로 전망되는 액수는 3조 4600억원에 불과하고, 민간 금융은 자연금융 개념조차 모호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자연금융 격차 진단: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한국 은행의 역할'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내 주요 은행들 산림파괴 고위험 산업에 지난 4년간 1조원 넘게 투자
기후와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위기에 맞서 금융의 역할은 매우 크다. 금융이 생물의 터전을 몰아내는 사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않고, 더 많은 생명의 번창과 연계되는 사업에는 재무적 혜택을 부여한다면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금융계는 자연을 파괴하는 쪽에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현재 세계는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경제활동에 매년 7조달러(약 9200조원) 규모의 금융을 쏟아붓는 반면,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데에는 그 2.8%에 불과한 2000억달러(약 260조원)를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GBF는 2030년까지 ‘유해 보조금’을 연간 5000억 달러 줄이고, 자연금융은 2000억 달러 더 늘리자고 결의하였고, 한국 역시 이에 서약했다.
하지만 국내 주요 은행이 산림파괴 고위험 산업에 지난 4년간 1조원을 넘게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생태계를 보전하는 투자는 자료 수집도 하지 않아 알 수도 없다고 한다.
이번 보고서는 자연금융 2000억달러 목표에 한국의 소비 수준과 생태발자국을 비추어 분담분을 추산한 결과 매년 약 42억달러(약 5조 5500억원)를 동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자연금융 규모는 2030년까지 지금 수준에서 약 2배(2020년 2000억달러 규모에서 2030년 4000억달러 규모)로 확대해야 한다고 추정되는 데 비해, 한국은 3배를 확대(현재 1조 8500억원에서 2030년 5조 5500억원)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 보고서 "민간에서도 생물다양성 정책 도입과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져야"
보고서는 또한 “(생물다양성 파괴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나라가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정배분 원칙에 따라, 이 액수 가운데 3분의 1은 개발도상국 지원에 사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추산한 2020년 생물다양성 분야 지출은 1조 8500억원 규모로, 책임분에 크게 못 미친다.
또한, 정부 기관의 연구에 따라 2030년에 예상되는 정부의 생물다양성 지출은 3조 4600억원 수준으로, 목표 대비 약 2조원이 부족하다. 이런 큰 부족분을 고려하면 민간에서도 생물다양성 정책 도입과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
국내 5대 시중은행(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도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GBF 목표에 부합하는 은행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 결과, GBF가 권고하는 포괄적인 자연금융 정책을 수립한 은행은 한 곳도 없었고, 은행 마다 일부 정책을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실제 투자는 산발적으로 작게 이뤄져 얼마가 투입되고 있는지 기초적인 정량 분석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반면, 지난 3년간 산림파괴 고위험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최소 1조 11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업에는 바이오매스 발전, 펄프제지, 팜유와 목재 생산 등이 있다.
보고서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숲을 벌채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활동에 대한 투자 배제를 명확히 하고, 자연기반해법(NbS – 설명 영상 참조), 생태계 보호 및 복원 등 자연 친화적 사업에 금융 지원을 우선하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정부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을 통해 생물다양성 관련 리스크와 의존성 공개를 의무화하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관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기후솔루션의 엘레오노라 파산(Eleonora Fasan) 연구원은 “생태계 붕괴는 기후변화와 함께 인류가 마주한 양대 위기로, 금융기관은 기후와 환경을 파괴하는 투자는 줄이고, ‘더 많은 자연’을 위한 금융을 확대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파산 연구원은 또 “한국 은행산업은 아시아 3대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는 만큼, 2조원의 민간 자연금융 격차를 빠르게 줄여나갈 수 있다“며 “은행은 포괄적인 산림파괴 투자 금지 정책과 구체적인 자연금융 확대 계획을 도입하고, 금융당국은 생물다양성 공시를 강화해 민간 부문의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