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오늘의 화석상’, ‘2년 연속으로 비산유국 중 최하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국이 마주한 과제를 여실히 드러낸 자리였다. 한국은 이번 COP 기간에 불명예스러운 ‘오늘의 화석상’에 선정됐다. 국제 기후환경단체들이 매년 발표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도 2년 연속으로 비산유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지난 24일 COP29 폐막과 관련, 논평을 통해 “이는 국제 시민사회가 한국의 기후대응 노력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번 COP29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핵심 의제는 ‘신규 기후재원 목표(NCQG)’ 논의였다. COP29 폐막일을 이틀 넘긴 마라톤 협상 끝에 세계 각국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2035년까지 연간 1조 3000억달러(약 180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확인하고, 이 가운데 최소 3000억달러는 선진국 정부가 주도해 마련하기로 24일(바쿠 현지시각) 합의했다.
◆"COP29 절반의 성공, 기후재원 어떻게 조성하고 제공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합의 없어"
이와 관련, 기후솔루션은 “3000억달러라는 규모는 이전 누적 온실가스 배출 규모 등을 보아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라 할 선진국의 책임에 견줬을 때 부족한 액수일 뿐 아니라, 이미 닥쳐온 기후 재난의 양상을 보았을 때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반면 1조 3000억달러 재원 마련과 관련해선 책임을 ‘모든 행위자(all actors)’로 규정해 선진국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국가까지, 게다가 공공뿐 아니라 민간까지 모든 참여로 열어 놓았다”고 전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기후재원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정도에 그쳤지, 어떻게 조성하고 제공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합의는 없어, 개도국은 말뿐인 ‘기후재원’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이번 합의는 최선의 기후대응을 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빈곤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나라로서, 첨예한 대립을 보인 양쪽에서 보다 진전된 합의를 이루기 위해 남다른 역할을 보일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이번 논의에서 그 노력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COP29를 종합하면 평가할 만한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기후솔루션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수적인 요소인 ‘에너지 전력망 및 전력망 서약’에 참여해 공동으로 2030년까지 세계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용량을 6배, 전력망은 2040년까지 8000만km를 추가 또는 개조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 감축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35개 나라는 ‘유기성 폐기물 메탄 감축(COP29 Declaration on Reducing Methane from Organic Waste)’ 선언을 하고,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시 유기성 폐기물에서 메탄을 줄이기 위한 부문별 목표 및 구체적인 정책과 로드맵을 세우기로 했다”고 일부 진전된 성과를 전했다.
특히 올해는 '식량과 농업분야 날'이 따로 있을 정도로 농업분야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심도 깊게 다루어졌다. COP에서 식량과 농업에서 배출하는 막대한 탄소 배출에 대응하는 여러 과제가 다뤄졌고, 앞으로 COP에서 각국의 농업분야 정부 관계자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논의됐다.
기후솔루션은 “진통 속 합의로 마무리된 COP 이후 중요한 것은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실천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에 모범 되는 기후리더십을 보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며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장기적 과제이며, 목표 달성 그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단기 목표를 강화해 나가는지, 이행 전략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세우느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허면서 “한국은 지난 COP에서 국제 메탄 서약,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서약에 가입하는 등 주요 협약에 손을 보탰다. COP29에서 유기성 폐기물 메탄 감축 서약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용량을 6배 확대하겠다는 서약에 동참하며 국제적 협력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후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르면 내년 2월 제출해야 하는 2035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통해 한국이 선도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첫 단추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 "우리나라도 국제사회 흐름에 발맞춘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시해야"
기후솔루션은 영국이 COP29에서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81%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국제 사회의 박수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한국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로서, ‘올해의 화석상’을 받을 정도로 현재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나라로서, 보다 야심 찬 목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COP29에서 NDC가 조기 발표되는 와중에 주요국들은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NDC에 대한 드라이브를 더욱 강력하게 걸기 위해 이니셔티브도 출범했다. 이 같은 이니셔티브가 출범할 정도로 국제사회가 각국의 NDC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활발한 만큼, 우리나라도 흐름에 발맞춘 NDC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고 주문했다.
이어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8월 ‘기후 소송’에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우리나라는 2035년 목표 설정을 포함한 기후대응에 있어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한’ 보다 상향된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며 “현재의 선형적인 감축 경로를 넘어, 모든 경제 부문에서 절대적인 감축을 담아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제적 기준’은 이미 우리나라도 15년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바 있다. 파리협약은 수립할 NDC의 조건으로 ‘공동의, 그러나 차이가 있는 책임과 각자 역량(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을 반영해야 한다는 이른바 ‘CBDR/RC 원칙’(이하 공정배분 원칙)을 규정했다”며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과 더불어 이번 COP29에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고려할 때 한국도 공정배분의 원칙과 가장 가파른 경로에 따라 NDC를 제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강해지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1950년부터 누적 배출량이 세계 18위(Global Carbon Project), OECD 국가 중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5위, 1인당 배출량 6위인 국가인 만큼 국제사회에서의 기후 위기 대응 책임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부연했다.
한국이 2035년 NDC를 설정할 때 얼마큼 지향을 높여야 하는가에 대해선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현재 수준(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과는 강화된 기준으로 NDC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언급해온 사실이다. 앞서 한국 기후환경단체 플랜 1.5는 지구 기온 상승 1.5도 목표 기준, 누적배출량 비중에 기초한 공정배분 방식을 적용해 한국의 2035년 목표를 산출한 결과 2018년 배출량 대비 67%를 감축하는 게 적절하다고 제시했다.
또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글로벌 지속가능성 센터(Center for Global Sustainability, CGS)가 최근 발표한 2035년 NDC 경로 평가 보고서(Enhancing Global Ambition for2035: Assessment of high-ambition country pathways)는 빠른 에너지 전환, 삼림 벌채 중단, 메탄 가스 감축 등의 조치를 가속해서 추진하는 ‘높은 야망’(High Ambition) 시나리오에 따라 글로벌 모델링 연구를 수행한 결과, 한국이 2030년 40% 감축(현행 목표) 달성이 가능하고, 2035년에 58% 감축까지 이뤄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CGS는 이러한 달성 가능 시나리오를 토대로 전력, 산업, 수송 등 부문별 상세 감축 경로가 담긴 한국 보고서를 내년 1월에 발표할 계획이다.
이 같은 동향과 관련, 기후솔루션은 “한국은 기후대응에 망설이거나 눈치 보는 국가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지금까지 부족한 기후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선제적인 NDC 상향을 제시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또한 단순한 국제적 약속을 맺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OECD 국가들이 논의 중인 화석연료 투자 제한 내용을 담은 수출신용 협정에 동참하는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이 올해 COP에서 ‘오늘의 화석상’ 1위를 받은 것도 다름 아니라 이 협상에 주도적인 반대를 해 왔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산업에 공적 금융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국제적 합의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은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벗고 기후변화 대응의 선도국으로 반전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COP29에서 받은 비판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변화의 시작점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끝으로 “앞으로 한국은 과거의 미흡했던 기후 대응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 직면한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2035년 NDC와 OECD 수출신용 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이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COP29는 한국에 비판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한국에 기회가 어디 있는지 보여준 발판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결단과 실천이 한국의 기후 리더십을 결정짓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기후리더십 좌표를 결정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기후 대응의 필요성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