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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노트]일본통 '박태준'이 그립다

여섯 살 때인 1933년 가을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시즈오카 현 아다미 시의 철도 터널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1945년 그는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때 광복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1964년 박정희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파견되면서 평생에 걸쳐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그가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박 전 명예회장의 일생을 조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본’과의 인연이다.

 

박 명예 회장이 일본 막후에서 펼쳤던 신화적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회자될 정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막후 접촉을 위해 무려 10개월 동안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열도를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최대 제철소인 야하타 제철(현 신일본제철)의 회장이자 일본철강연맹 회장이었던 이나야마 요시히로 사장 등과 인연을 맺었다.

 

박 명예회장은 이나야마 사장 등 일본 재계 핵심 인사들과 쌓은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와 철강업계를 설득해 1969년 포항제철이 일본으로부터 대일청구권 자금을 끌어다 공장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이 없었다면 포항제철은 없었을지 모른다. 용광로를 지을 수 있는 돈도 대일청구권자금에서 나왔고, 제철소 운영도 일본 신일철로부터 배웠다.

 

양국 재계의 교류채널을 구축한 것도 박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1981년 한일경제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초대 협회장을 맡아 세지마 류조 이토추상사 회장,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이마이 다카시 신일본제철 회장, 야마구치 노부오 아사히화학 회장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거물들과 우리 기업인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 사이의 교류도 이때 이후 본격화했다.

 

박 명예회장은 일본 정계 인사들과도 인연이 깊었다. 전화 한 통화'로 외교적인 난관을 돌파할 때가 많았다. 그는 일본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과 1970년대부터 탄탄한 우정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박 명예회장은 1988년 한일의원연맹 한국 대표로 일하면서 일본 정계에서의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의 경협자금을 받아 오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언제나 “(한국을 발전시키려면) 일본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일본을 ‘알고, 활용하고, 넘어서는(知日·用日·克日)’ 3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런 박 명예회장을 두고 나카소네 전 총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 명예회장을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의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쉬는 때조차도 한국에 무엇인가를 가져가려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박 명예회장은 한일 막후채널의 달인들이었다.

 

한일 관계에서 정상적인 루트로 풀지 못하는 일들을 양국의 유력 정치인들이 막후에서 풀어낸 적이 종종 있었다. 한일관계에 관한 한 박 명예회장의 영향은 지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만한 일본통이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을 아는 정치인이 없고, 한국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일 양국간에 현안이 생겨도 공식 대응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그저 지켜보면서 안타까워만 하는 게 지금의 한일 관계 현실이라 생각하니, 박태준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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