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노트]다카키 마사오와 도요다 다이쥬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라는 이름을 거론했을 때 불현듯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살아생전 두 사람은 서로 간 반목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어쩌면 인생 최대 라이벌로 살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독재를 일삼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음모와 술수, 연금과 구금 등으로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산업화 세력의 상징인 박 전 대통령과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김 전 대통령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일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일제 강점기 태어났던 두 사람(박정희 1917년, 김대중 1924)은 우선 ‘일본어’에 능통하다. 

 

두 사람이 일본어에 능통했던 것은 당시 한국어 말살 정책을 펼쳤던 일본이 한국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강제로 사용하고 배우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또 식민지 통치를 본격화하면서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창씨개명’. 한국인의 이름과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했다. 박 전 대통령 일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 박 전 대통령은 1942년 일본 육사에 편입해 졸업을 한 뒤 1944년 육군 소위로 임관할 때까지 다카키 마사오로 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 일본 이름은 ‘도요다 다이쥬’. 김 전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면 목포상고 재학시절 담임선생이었던 무쿠모토 이사부로씨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말로 “‘先生,豊田です(선생님, 도요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일본의 한 언론이 소개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교편 생활을 했던 박 전 대통령은 그후 일본 장교로, 김 전 대통령은 일본인이 세운 해운회사로 취업했다. 


비록 시대가 달랐지만 두 사람은 일본 천황(일왕)과도 관계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시절인 지난 89년 1월 일본 히로히토 천황(1901년 4월 29일 ~ 1989년 1월 7일)이 작고하자 주한일본 대사관저 분양소를 찾아 90도 허리굽혀 조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장교였을 때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 천황이 히로히토 였다.

 

두 사람의 터닝포인트도 일본과 그 궤를 같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 차관을 들여와 한국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김 전 대통령은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서 민주화 화신으로 불렸다.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살아온 방식과 환경이 달랐지만 삶만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난 두 사람은 굴곡 많은 삶과 지도자의 파란만장한 영욕의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맞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김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용서하고 화해하며 모든 것을 털고 갔다.


현재 두 사람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나란히 누워 있다.

 

이정희가 잠든 다카키 마사오를 깨우자, 그 반대편에선 도요다 다이쥬를 깨우며 흔들 조짐이다.


도요다 다이쥬 이름만으로 김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부친다면 얼마나 역설일까.

 

독립투사 말고 일제강점기 친일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바로 우리의 치욕스런 삶이기도 했다.

 

이제 '부관참시' 그만하자.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