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기후위기發 ‘산불’, 또 다른 사각지대 ‘송전선로’

2022.07.13 07:23:23

녹색연합, 울진·삼척 산불, 핵발전소·송전선로가 키웠다
송전선로가 키운 동해 산불...산불 위험성 검토 없이 설치
산불 취약지 내 에너지시설에 대한 산불 대비책 마련 시급

[KJtimes=정소영 기자] 산불의 일상화와 대형화가 가속하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 재난 위험을 가중하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산불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경운동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에 따르면 부지를 선정할 때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의 밀집도와 경급을 고려해 중경목 이상 침엽수의 밀도가 높은 지역은 에너지 시설 건설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변부 산불 취약지 진화 동선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부지를 선정하고 필요한 구간은 지중화를 해야 한다. 산불 대비책은 산지 보호뿐만 아니라 송전선로 안전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강원·경북지역 대형 발전소·송전탑 산불 재난 위험 가중

녹색연합은 산불에 취약한 강원·경북지역에 밀집된 대형 발전소와 송전탑이 산불 재난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올해 강원·경북지역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형산불에서 송전선로와 발전소 시설이 산불에 아무런 대비 없이 방치된 사실이 드러났다. 산불 취약지에 자리한 에너지 시설은 진화 역량을 분산하고 대규모 정전과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시설이지만, 산불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 없이 운영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 3월 4일 울진군 두천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최대 초속 25m의 강풍을 타고 3시간 만에 한울핵발전소와 삼척 LNG기지 인근까지 번졌다. 당시 배치된 소방차 112대 중 40여 대가 한울핵발전소와 LNG기지를 방어했다. 산림청에서 동원한 진화 장비 대부분이 에너지시설 방어에 투입됐다. 3월 4일부터 6일까지 산불 초기 진화역량이 에너지시설 보호에 집중되면서 주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고 결국 화선이 넓어지며 산불이 대형화된 것이다.



한울핵발전소 주변 산지는 국가 보호시설 인근 침엽수림으로 산불 취약 지수 A,B 등급에 해당하는 산불 취약지이다. 그러나 산불에 대한 아무런 대비는 전무했다.

한울핵발전소는 이미 2000년 4월 발생한 동해안 산불로 송전선로가 고장 나면서 비상정지 사고를 겪었다. 당시 삼척시에서 넘어온 불은 발전소와 불과 3km 떨어진 울진군 북면 나곡리까지 번졌다.

이후 핵발전소와 송전선로에 자체적인 산불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지적 받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산업통상자원부는 별다른 대책 없이 20년 넘게 발전소를 운영했다. 발전소와 1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은 4시간 만에 부지 안까지 번졌으며 핵연료가 가득한 발전소 건물 바로 앞에서 간신히 진화됐다. 핵발전소 8기가 밀집한 한울발전단지를 지키는 자체 소방 인력은 소방차 2대와 25명의 소방대원이 전부였다.

녹색연합은 “송전선로도 산불에 아무런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며 “산불이 발생한 지 3시간 만에 한울핵발전소에 연결된 송전선로 4개 중 3개 노선이 송전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울-신영주 345kv 단 1개 선로가 세 차례 정지 끝에 간신히 기능했다”면서 “한울-신영주 선로까지 기능을 상실했다면 전국단위의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3월 4일부터 10일까지 한울 핵발전소에 연결된 송전선로에서 총 51회의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한울6호기는 전력공급이 중단돼 비상시에만 작동되는 디젤발전기까지 가동됐다.

녹색연합은 “송전선로는 소방헬기 진입을 방해하며 산불 진화를 더디게 만들었다”며 “산불 진화에 참여한 진화 헬기 조종사들은 ‘강풍과 연기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송전선로로 인해 목표지점으로 접근이 더욱 어려웠고 진화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 산불 진화 헬기에 죽음의 철선 ‘송전선로’

송전선로는 능선과 계곡에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해야 하는 진화헬기에는 죽음의 철선과도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 2017년 5월 8일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 과정에서 진화헬기가 송전선로에 기체를 부딪쳐 정비사가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녹색연합은 “산지를 관통하며 설치되는 송전선로는 산불 진화를 방해하고 송전 불능 상태에 빠지면 2차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시설이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사전환경검토나 대비책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전력 전력 영향평가 규정을 보면 송전선로 입지 선정 시 검토해야 하는 안전성 항목에 산불 위험성은 빠져있다. 환경영향평가와 산지전용허가에서도 산불 위험성과 산불 대비책은 전혀 검토되지 않는다. 

정부는 대형 발전소와 송전선로로 포화상태인 강원·경북지역에 발전시설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4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또 신한울 1·2호기가 운행을 앞두고 있다. 

산업부는 신규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 송전을 위해 ‘동해안~신가평 500kV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경북지역 220km 구간에 500kV 송전탑 440기가 설치되는 사업이다. 강원·경북지역에는 이미 1만1600여기가 넘는 송전탑이 설치돼 있다. 이는 전국 송전탑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사업 설치 대상지 중 울진군과 삼척시, 봉화군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소나무 숲이 발달한 곳이다. 특히 금강소나무 최대 서식지로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에서 소방대원들이 목숨 걸고 지켜냈다. 2만ha가 넘는 산에 지름 50cm, 높이 15m가 넘는 대경목 침엽수들이 밀집 서식한다. 

녹색연합은 “이처럼 침엽수 밀집 지역 한가운데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것은 이 지역 산불 진화를 포기하고 주민들과 송전선로를 산불에 무방비로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정소영 기자 jsy1@kj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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