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이 노년층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50세 이상 고령층 123명이 "정부가 노년층의 생명권에 대한 기본권 보호의무를 져버렸다"며 정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지난 6일 진정을 제기해 주목된다.
이날 기후단체 '60+기후행동'과 기후솔루션은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는 노년층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급하고 심각한 위협"이라며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실태 조사 등의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국내 인구구조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3.5%인 데 반해, 최근 10년간 온열질환 사망자 수 중 68.5%가 65세 이상이었다. 한국의 급격한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고령층 피해의 비중은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기후위기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남녀노소 모두를 가리지 않는 위협이지만, 노년층이 특히 취약하다는 점은 정부도 연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환경부가 2020년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 대기오염 및 알레르기로 인한 건강영향, 기온 증가에 따른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증 등의 항목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다른 인구에 비하여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인구구조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3.5%인 데 반해, 최근 10년간 온열질환 사망자 수 중 68.5%가 65세 이상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가 들어있는 국제 조직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역시 지난 2018년 발간한 'IPCC 1.5도 특별보고서'에서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를 온도 관련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집단으로 분류했다.
질병관리청의 연구 보고서에서도 최근 10년 사이 폭염 일수가 가장 길었던 2018년 경우 65세 이상의 온열질환 사망자 수가 연평균의 2배 이상으로 급증한 바 있다.
국내 고령층에 대한 정의는 법적으로 다양한데 60+기후행동과 기후솔루션은 이 가운데 가장 넓은 '50세 이상'을 기준으로 삼아 진정 참여자를 모집했다(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상 준고령자는 50-55세, 고령자는 55세 이상으로 정의). 이에 참여한 123명 진정인의 평균 연령은 63세이며, 최고령자의 나이는 92세다.
◆ "정부, 취약계층 노인들을 기후재난 앞에 방치"
국민의 생명권 위협에 대해 우리나라 사법부는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결정(2018헌마730)에서 "적어도 생명·신체의 보호와 같은 중요한 기본권적 법익 침해에 대해서는 그것이 국가가 아닌 제3자로서의 사인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적극적인 보호의 의무를 진다"고 했다.
또 생명에 대한 위협의 경우 실제로 그 위협으로 인해 생명이 상실된 경우뿐 아니라 '위협받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국가가 그 '침해의 위험을 방지'할 보호의무를 진다고 보았다.
실태가 이러함에도 정부가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번 진정의 취지다.
60+기후행동의 박태주 운영위원은 "빈곤에다 노후까지 겹쳐 있는 노년층은 취약계층 가운데서도 취약계층"이라며 "마치 정글에서 늙은 얼룩말을 사자 앞에 내버려두듯이 정부는 취약계층 노인들을 기후재난 앞에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인들은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조처와 이미 발생하고 있는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 등 크게 2가지 항목에서 정부의 책임 방기를 지적했다. 우선, 기후변화 억제 측면에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2016년 체결한 '파리협정'을 통해, 기후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온의 상승폭을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선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가야 하는데 한국의 감축 목표는 뒤쳐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진정인들은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다 높게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해 1월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에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 설정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 이미 보다 잦은 폭염과 폭우, 한파 등으로 기후위기가 현실로 닥쳐오고 있음에도, 고령층을 위한 대책의 기본조차 돼 있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기후솔루션은 "국제연합(UN)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는 2022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복력을 키우고 취약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노인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 수집을 우선 강조한 바 있다"며 "그런데 한국 정부는 2011년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처음 수립한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령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에 대한 기후 위험 실태조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단지 쪽방촌 주민과 야외노동자를 대상으로 온열질환 위험에 대한 조사가 있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후솔루션의 김현지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파리협정에 따라 2025년 차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여야 하며, 환경부는 올해 감축목표를 수립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가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붓꽃의 꽃말인 '좋은 소식'처럼 한국이 기후 악당의 오명을 벗고 적극적인 기후 정책이란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123인의 진정인은 인권위에 정부를 향한 권고를 내 달라고 3개 요구안을 제안했다.
첫째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섭씨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하고 효과적인 수준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설정하고, '탄소중립∙녹색성장 제1차 국가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감축목표를 개선할 것과 두번째로는 '파리협정'에 따른 차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함에 있어, IPCC 제6차 평가보고서(2023)에서 발표된 기준을 반영하고,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섭씨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하고 효과적인 수준의 목표를 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세번째는 기후위기가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인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이로부터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 의무라는 관점에서, 기후위기가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인권에 미치는 위험에 대한 실태조사 및 역학조사를 신속하게 실시하며, 이에 기초해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 및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