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최근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근무하던 하청노동자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와 관련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 불인정 결정을 내렸지만, 법원 1심과 항소심이 이를 뒤집고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서울고등법원(행정3부, 재판장 정준영)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했던 진현철씨에게 발생한 백혈병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1심의 결론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은 지난 2023년 11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이 진현철씨에게 발생한 백혈병이 '직업 관련성이 있다' 즉, '산업재해'라고 판결했던 1심 판결에 불복한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기각한 결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환경보건시민센터, 안동환경운동연합, 대구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봉화군영풍제련소주민대책위원회, 영풍제련소주변환경오염및주민건강공동대책위원회 등은 공동 논평을 통해 "영풍석포제련소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는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돼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걸리고, 하루만 일했던 노동자도 비소노출로 인한 급성중독으로 사망한다"면서 "영풍석포제련소는 아연광석과 코크스를 혼합해 황을 제거해 용광로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순도 높은 아연을 생산하는 공장인데 이 과정에서 비소,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여러 유독물질이 발생한다"고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석포제련소가 계속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환경부가 통합환경허가를 취소하고 제련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때, 노동자 백혈병의 산재인정으로 석포제련소는 환경문제 뿐만 아니라 작업환경에서도 노동자를 죽고 다치게 하는 곳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면서 "2024년 국회 국정감사의 지적으로 경상북도에 '석포제련소 폐쇄 위한 티에프'가 구성됐다. 하루 빨리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로드맵이 제시되고 실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7년여간 석포제련소서 일한 하청노동자 진씨 '급성 백혈골수암' 진단
진현철씨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7년여간 석포제련소의 제련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 찌꺼기를 긁어내는 일을 했는데, 2017년 2월부터 온몸에 힘이 없고 음식먹기가 싫어지며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됐다. 진씨는 병원에서 '급성 백혈골수암' 진단을 받았다.
진씨는 2019년 9월 산재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백혈병을 일으키는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의 '공장내부 인체노출수준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2021년 6월 기각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현철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과정에서 "피고(근로복지공단)이 법원에서 주장하는 사유는 제1심에서 주장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고, 제1심과 당심에서 제출된 증거를 피고의 주장과 함께 다시 살펴보더라도 제1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고 인정된다"고 1심 판결을 인용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인용하면서, 3가지 내용을 추가했다. ▲포름알데히드는 이 사건 사업장과 같은 금속 제조시설 등의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고온 환경에서 화학반응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는 점 ▲이 사건 사업장에 대한 '배출시설 등 설치운영허가 검토결과서'에 따르면 용해 및 정액 공정에 설치된 다수의 배출구에는 포름알데히드에 대한배출기준이 설정돼 있어 원고가 근무한 필터프레스 관리 업무 장소는 포름알데히드의 상시적인 발생을 예정하고 있는 점(그럼에도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실시된 작업환경측정에서는 포름알데히드를 측정 대상 물질로 분류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를 측정하지도 않았다는 점 ▲포름알데히드는 호흡기를 통해서 빠르게 흡수되는데 원고는 2016년 이전까지 방진기능이 없는 일회용 마스크 등만을 제공받아 필터프레스 관리 등 업무를 해왔던 것으로 보이고, 이와 같이 이 사건 사업장의 국소배기장치 등도 제대로 작동되지 아니하여 원고는 상당 기간 포름알데히드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상당한 점을 산업재해 인정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특히, 1급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비소의 경우(앞서 본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에서 2명의 위원은 이 사건 상병에 대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면서, 이 사건 상병의 원인에 비소 등의 노출로 인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2015년 이 사건 사업장에서 실시된 토양오염 조사에서 비소로 인한 오염수치가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 우려 기준보다 최대 33배까지 초과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 사업장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배출허용기준초과', '특정수질 유해물질 공공수역 유출', '폐기물 부적절 보관으로 주변 환경오염', '무허가대기배출시설 설치', '폐기물 부적정 보관으로 인한 주변환경오염', '황산가스 누출사고 미신고', '폐수배출허용기준초과', '비산먼지 발생 억제조치 미흡', '폐수무단방류' 등의 대기환경보전법 등 각종 위반행위로 인해 개선명령, 과태료 부과, 조업정지, 고발 조치 등의 행정처분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또한 이 사건 사업장에서 5년간 27건의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소음·광물성분진, 카드뮴 등으로 인한 직업병 유소견자가 매년 20명 이상 발생하는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단에 더해 이러한 내용을 추가해 진현철씨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4월 퇴직노동자 '소음성 난청'·2023년 12월 노동자 4명 비소 중독 이중 1명 사망
앞서 진씨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라고 인정한 1심 법원은 그 이유로 ▲노동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체 영향이 미미하다 할 수 없다. ▲포름알데히드는 백혈병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사람과 동물실험에 명백한 발암근거가 있는 Group1 발암물질로 구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석포제련소에서 300건이 넘는 법 위반을 적발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진씨가 근무한 기간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3가지를 산업재해의 근거로 판단했다.
법원은 또 진씨가 휴일없이 근무하고 제련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으며, 근무 전에 별다른 건강이상이 없었고 유전적 소인, 가족력도 전혀 없다며 백혈병과 진씨의 영풍석포제련소에서의 업무관련성을 인정했다.
2023년 4월에는 영풍석포제련소의 하청업체 퇴직노동자가 법원에서 소음성 난청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도 했다. 2023년 12월 9일에는 노동자 4명이 비소에 중독돼 이중 한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한편,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한 채 50여년을 가동중에 있는 영풍석포제련소는 카드뮴 등이 다량 함유된 산업폐수를 불법으로 배출하다 적발돼, 2025년 2월26일부터 4월 24일까지 58일간 공장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2019년 4월 환경부에 의해 낙동강에 폐수를 무단 배출하고 무허가 배관을 설치한 사실 등이 적발된 지 약 5년 8개월 만이다. 이 기간 영풍은 지속해서 조업정지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으나 2024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조업정지가 확정됐다.
그밖에도 황산가스 감지기를 끈 채 조업한 사실이 적발돼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고, 카드뮴 오염수 누출·유출로 전현직 경영진의 재판도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