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바구니가 사라진 시대…“장보러 갔다가 빈손으로 나와요”

  • 등록 2026.04.27 1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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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고민이 ‘뭘 더 살까’였다면 지금은 ‘뭘 빼야 하나’ 고민

[KJtimes=김봄내 기자] # “뭐라도 사야 하는데, 이 가격이면 그냥 나가게 되더라.” 서울 동대문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직장인 권정미씨(29⸱여⸱가명)는 장바구니를 들고 입구를 들어선 20분 뒤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그대로 계산대를 지나쳐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장바구니 대신 휴대폰만 남아 있었다. 장보기는 끝났지만 구매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 “예전에는 장을 보면 일주일이 해결됐는데 지금은 하루치도 버거울 때가 있다.”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서민정씨(41⸱여⸱가명)는 예전에는 고민이 ‘뭘 더 살까’였다면 지금은 ‘뭘 빼야 하나’ 고민이라고 푸념했다.

 

◆ “카트는 채워지지 않고 계산만 늘어난다”

 

# “마트 가면 다 사고 싶다가도 계산하면 다 내려놓게 된다. 이제는 장보러 가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안 살 수 있나’ 시험하는 느낌이다. 서울 양재동 한 마트에서 만난 자취생 차유미씨(22⸱여⸱가명)는 장바구니에 넣고 다시 빼는 시간이 제일 길고 결국 라면만 산다며 한숨을 쉬었다.

 

‘카트는 채워지지 않고 계산만 늘어난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장바구니는 가득 차지 않고 소비자는 더 빨리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KJtimes>는 취재 과정에서 ‘장보러 갔다가 그냥 나온다’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쉽게 발견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식재료 일부만 선택 후 ‘다음에 사자’는 반복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5만원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고 장보기에 나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장보기 비용이 8~10만원으로 상승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필수품 외 구매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보기가 무거워진 이유는 단순 물가 상승이 아니다. 식탁 경제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압박을 하는 핵심 3요소로 식재료 가격의 동시 상승, 가공식품의 가격 리셋, 소포장화와 단가 상승 등을 꼽는다.

 

한 시장 전문가는 “채소, 육류, 유제품 전반 상승은 특정 품목이 아니라 전체 바구니 상승을 가져오고 라면, 과자, 즉석식품 등 반복 인상은 1000원대 제품이 1500~2000원대로 이동하게 한다”며 “이에 따라 적게 사는데 더 비싸지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그 결과 소비자는 같은 금액으로 예전보다 훨씬 적은 양만 구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는 최근 이 현상을 내부적으로 ‘회전형 이탈 소비’라고 부른다. 카트를 끌고 들어왔지만 구매 없이 나가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동대문의 한 대형마트 직원은 “현장에서 관찰되는 행동 변화을 보면 가격 확인 후 즉시 구매 포기하거나 장바구니 담았다가 다시 내려놓기 등을 가장 많이 본다”며 “온라인 최저가 확인 후 재방문을 반복하거나 한 번에 장보기 대신 분할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듣고 있다”고 귀띔했다.

 

◆ “살 이유를 계산하는 시대다”

 

경제 전문가들은 장보기는 원래 ‘계획 소비’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즉석 판단’의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는 계산기보다 먼저 감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장보기’가 왜 가장 먼저 무너졌을까.

 

한 경제 전문가는 “이건 꼭 필요한가, 지금 안 사도 되는가, 다른 걸로 대체 가능한가 등 장보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면서 “결과적으로 장바구니는 생활 리스트가 아니라 심리적 필터링 공간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증권가 한 분석가는 “장보기는 경제 구조에서 가장 유연한 소비 영역”이라면서 “주거나 교통과 같은 생존 필수도 아니고 통신이나 보험과 같은 고정비도 아니고 여행이나 여가 같은 감정 소비도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경기 변화가 오면 가장 먼저 줄어들고 가장 먼저 행동 변화로 드러난다”며 “다시 말해 장보기는 단순 소비가 아니라 가계 경제의 스트레스 지표”라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응을 위해 이제 매출보다 체류 시간 감소나 카트 사용률 감소, 소액 결제 증가, 방문 대비 구매 전환율 하락 등 다른 지표를 본다”며 “고객이 오래 머무르는데 안 사는 게 아니라 아예 빨리 나가버리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는 유지되지만 구매는 줄어들고 필요는 있지만 선택은 사라지고 시장은 존재하지만 거래는 줄어든다”면서 “장보러 갔다가 빈손으로 나온다는 말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고 그 안에는 이미 구조화된 변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봄내 기자 kbn@kj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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