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전보 ▲키움금융센터 CS업무팀장 안윤미 ▲금융상품팀장 민석주 ▲투자솔루션팀장 조병희 ▲키움금융센터 CS기획팀장 김정훈 ▲결제업무팀장 고강인 ▲키움금융센터 CS운영팀장 최태환 ▲컴플라이언스팀장 유영진 ▲글로벌영업팀장 윤주익 ▲디지털금융팀장 최용현
[KJtimes=이지훈 기자]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후농(後農) 김상현 전 국회의원이 노환으로 18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부친인 고인은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른바 '3김(김종필 포함) 정치'를 주도할 당시 이들 양김의 계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민주당 계통의 정당에 주로 몸담았고, 옛 새천년민주당에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도 힘을 쏟았다. 6대부터 16대 국회까지 모두 6선을 지낸 고인은 생전에 재치 있는 연설과 지략, '마당발' 인맥으로 특히 잘 알려졌다. 1935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해 10대 때 부모를 모두 여읜 뒤 갖은 어려움을 겪다가 DJ와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65년 서울 서대문갑 보궐선거에서 원내에 처음 진입했고 내리 3선 하는 데 성공했다. YS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을 때 경쟁자였던 DJ를 도와 후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유신 반대운동'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연거푸 옥고를 치르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면서 야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원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
◇과장급 전보 ▲서울지방조달청 시설계약과 고기석 ◇서기관 승진 ▲구매사업국 쇼핑몰구매과 최진구
▲김영자씨 별세 ▲권세영(KS건축 대표) 대영(KS건축 부대표) 미영씨 모친상, 심용(한화투자증권 경기권역 상무)씨 빙모상 ▲11일, 충남대학교 병원 장례식장(☎042-280-8181) ▲발인 13일 오전 7시30분
[KJtimes=장우호 기자]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952년 2월 7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와 故 강태영 여사 사이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4년 멘로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고 1976년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 때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서정화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의 장녀 서영민씨와 결혼했다. 1977년 태평양건설 해외수주담당 이사로 입사했고 이듬해 사장에 올랐다. 1981년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화약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1982년 한양화학(現 한화케미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하면서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했다. 1983년 경인에너지(現 SK인천석유화학) 내국화를 단행했다. 1985년 정아그룹(現 한화호텔&리조트), 1986년 한양유통(現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하면서 3차산업에 진출했다.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한 뒤 1992년부터 경향신문사 회장을 지냈다. 해외 진출을 추진하며 1993년 아테네은행,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現 헝가리 한화은행) 등
◇본부장 승진 ▲경영전략실 박준철 ▲감사실 김동화 ▲여신금융부 장경준 ▲서울지역본부 강왈구 ▲부산지역본부 전성기 ▲인천지역본부 조근준 ▲광주전남지역본부 김봉석 ▲울산경남지역본부 문인영 ▲경기지역본부 정순우 ▲강원지역본부 장경수 ▲충북지역본부 이창수 ▲전북지역본부 이경열 ▲경북지역본부 이재설 ◇ 본부장 전보 ▲리스크관리부 노경호 ▲기획관리실 정선채 ▲총무부 안보기 ▲MG금융경제연구소 허종일 ▲사업지원부 박도형 ▲금융소비자보호실 박해주 ▲공제마케팅부 임봉균 ▲대구지역본부 이현 ▲대전충남지역본부 이재경 ▲제주지역본부 김종만
◇신규 선임 ▲감사 임종록
[KJtimes=김봄내 기자]“나는 행운아였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다. 앞으로 우리 경제, 기업이 많은 발전 있을 수 있게 많은 도움 부탁한다.” 총수 공백기 CJ그룹의 버팀목 역할을 해낸 샐러리맨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이채욱 CJ그룹 부회장이 27일 CJ㈜ 주주총회를 끝으로 명예롭게 퇴진했다. 이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부회장직만 유지한다. 사실 재계에서는 몇 년 동안 ‘CJ 구원투수’로 널리 알려진 이 부회장의 퇴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폐 질환이 있는 그가 수차례 퇴진 의사를 밝혀왔던 탓이다. 하지만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의 만류로 CJ그룹 경영 정상화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 재계에서 이 부회장은 CJ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그는 총수인 이 회장이 지난 2013년 경영비리 혐의로 구속된 다음 손경식 회장, 이미경 부회장 등과 함께 비상경영위원회에 포함됐고 이후 CJ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 이 부회장이 걸어온 발자취는 어떨까. 경북 상주 출신인 그는 1946생으로 5남2녀 중 장남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장남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보직] ◇부사장/COO ▲영업 및 경영관리 총괄 황성엽 ▲IB 총괄 서병기 ◇본부장 ▲구조화금융본부 배준성 ▲법인영업본부 현원식 ▲종합금융본부 은활 ▲APEX패밀리오피스본부 김응철 ◇담당임원 ▲부천지점 주철학 ▲브랜드전략팀/인사팀 김동준 ▲영업전략부 권형진 ▲APEX패밀리오피스부 임동욱 ▲FSS부 이중인 ◇부서장 ▲감사실 김정일 ▲고객컨설팅부 강상욱 ▲대치센터 임재경 ▲리스크관리팀 이동규 ▲서면지점 배철민 ▲신탁운용부 구자환 ▲연금컨설팅부 김난영 ▲운용지원부/자산운용부 이재연 ▲정보보호팀/준법지원팀 이시복 ▲프로젝트금융부 이인재 ▲해운대지점 서영숙 ▲PI부 이상섭 [전보] ◇부장 ▲자산전략팀 오광영 ▲APEX패밀리오피스부 노병기 ▲FSS부 김홍섭 ◇차장 ▲경영지원팀 장기영 ▲금융자산영업부 조성권 ▲인사팀 윤창옥 ▲준법지원팀 구문엽 ▲FSS부 한동민
◇부서장 신규(재) 보임 ▲경영지원본부 인덱스사업부장 황우경 ▲유가증권시장본부 증권시장마케팅실장 정규일 ▲코스닥시장본부 코넥스시장부장 이근영 ▲코스닥시장본부 성장기업부장 이효정 ▲파생상품시장본부 글로벌파생시장부장 박찬수 ▲파생상품시장본부 장내청산결제부장 최재웅 ▲시장감시본부 시장감시부장 정석호 ▲파생상품시장본부 증권파생상품연구센터 연구실장 이인수 ◇부서장 전보 ▲경영지원본부 전략기획부장 송영훈 ▲경영지원본부 인사부장 채현주 ▲경영지원본부 총무부장 김용상 ▲경영지원본부 홍보부장 정지헌 ▲경영지원본부 IT전략부장 김대영 ▲경영지원본부 IT관리부장 정근영 ▲경영지원본부 해외사업부장 변광덕 ▲유가증권시장본부 증권상품시장부장 문용운 ▲유가증권시장본부 상장부장 박승배 ▲유가증권시장본부 공시부장 공도현 ▲코스닥시장본부 코스닥시장부장 윤기준 ▲코스닥시장본부 상장유치실장 김재향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 김기경 ▲코스닥시장본부 기술기업상장부장 이호성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장 김영 ▲시장감시본부 시장감시제도부장 서충열 ▲시장감시본부 투자자보호부장 김윤생 ▲시장감시본부 심리부장 조영철 ▲시장감시본부 특별심리실장 김경학 ▲시장감시본부 감리부장 황의천 ▲감사위원회 감사실장 김인우
[KJtimes=장우호 기자]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192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故 김재민씨와 故 오명철 여사의 4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천안북일사립학교와 직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경기공립학교에 입학한 뒤 원산공립상업학교로 편입해 1941년 졸업했다. 사업을 한창 크게 키우던 1970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형인 故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배우자 故 강태영 여사와의 인연이 이뤄졌다. 양가는 이미 집안 간 혼인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장남이 결혼을 미루자 부친이 차남인 김 차업주에게 혼인을 강요한 것이다. 1942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하면서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자 지배인 자격으로 이 회사를 인수해 미 군정청 등으로 판로를 개척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조선화약공판을 인수할 새로운 회사법인이 필요해짐에 따라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53년 서울 회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1956년 인천화약공장을 복구해 1957년 다이너마이트 원료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생산, 1958년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
◇ 전보▶ 인사관리부 (부장) 황미연
[KJtimes=장우호 기자]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1965년 4월 20일 서울특별시에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故 이응숙 여사 사이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84년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8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1990년 뉴욕대학교 MBA 과정을 수료했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미학과 출신의 서지원씨와 결혼했다. 1988년 동양맥주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가 1992년 글로벌 광고기획사 맥켄에릭슨에 입사해 도쿄지사와 뉴욕 본사에서 근무했다. 1993년 두산그룹으로 돌아와 4년간 두산아메리카에서 근무했다. 1997년 두산상사 이사, 1999년 두산 상무를 역임했다. 2001년 두산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조정실장 부사장을 맡은 뒤 2007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09년 두산 사장, 2012년 두산 부회장,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2016년 형 박정원이 두산그룹 회장에 오르자 두산그룹 부회장에 올랐고,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을 함께 겸임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2000년 말 민영화된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침체된 직원들의 사기를 끌
[KJtimes=장우호 기자]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1962년 3월 9일 서울에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故 이응숙 여사 사이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1년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5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1989년 보스턴대학교 MBA과정을 수료했다. 17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故 김인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소영씨와 결혼했다. 부친 박용곤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두산산업에 입사해 1990년 두산산업 뉴욕지사와 동경지사 등 해외에서 근무했다. 1992년 동양맥주에서 과장으로 있었고 1993년 부장, 1994년 이사, 1997년 상무에 올랐다. 1998년 두산으로 자리를 옮겨 관리본부에서 상무로 근무했다. 1999년 관리본부 총괄 전무에 올랐다가 같은 해 두산 상사BG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2001년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2007년 두산 부회장, 2009년 두산건설 회장,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거쳐 2012년 두산 회장에 올랐고 2016년부터 숙부인 박용만 전 회장으로부터
[KJtimes=장우호 기자]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은 1943년 9월 16일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여사 사이 6남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96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8년 서울대학교에서 의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외과학 석사, 1977년 외과학 박사학위를 땄다.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음대를 나온 故 엄명자 여사와 혼인했다. 2003년 엄 여사가 지병으로 별세하자 홀로 지내다가 2009년 동문이자 20세 연하 의사 윤보영씨와 재혼했다. 둘은 서울대 의대 동문회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양천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윤씨는 결혼 2년 뒤 내조에 전념하기 위해 의사생활을 그만 뒀다. 197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1978년 조교수에 오른 뒤 1983년 부교수를 거쳐 교수에 올랐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브리검&위먼스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하버드대 의대에 몸담을 당시 담석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귀국 후에도 20여년간 담석 치료를 위해 한우물을 팠다. 1993년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 실장, 1995년 진료부원장을 지낸 뒤 1998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