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양국에 수십개의 기업군을 거느린 롯데왕국의 창립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주군에서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 울산농고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은 1941년 일본 시모노세키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단돈 83엔이 전부였던 가난한 문학청년이었지만 성공의 꿈은 가슴 가득 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생계를 위해 우유배달에서 막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었다. 주경야독 끝에 신 총괄회장은 와세다고등공업 응용학과를 졸업했다. 1945년엔 사업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노동일로 모은 밑천으로 도쿄의 한 창고에 기름, 비누공장을 설립한 것.
그리고 1948년 지금의 롯데를 있게 한 공장을 세운다. 공장에서 만든 것은 껌이었다. 당시 일본엔 미군의 영향으로 껌이 대유행을 했고 자본금 10만엔, 종업원 10명으로 껌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
회사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 ‘샤롯데(샤를로테)’에서 따와 ‘롯데(LOTTE)’로 정했다. 이 회사가 롯데왕국을 이루는 초석이 된 것이다.
일본 롯데는 껌, 초콜릿 시장을 평정하며 일본의 종합제과 메이커로 성장한다.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67년이다. 5.16 직후 자유당정권이 무너지고 재일동포의 재산반입이 허용되자 신 총괄회장은 그해 4월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당초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세우려고 했던 것은 제철공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제철업만은 국영으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제철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롯데제과는 순항을 거듭해 국내에도 빠르게 정착했고 신 총괄회장은 새 사업들을 속속 추진했다. 1974년에는 호텔롯데를 만들었고 롯데월드, 영등포 롯데백화점 등을 만들며 거대 유통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차츰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일 양국에서 유통업계를 거머쥐고 있는 신 총괄회장은 지금도 여전히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며 직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경영전선에 있을 당시에 일본을 오갈때면 작은 서류가방을 들고 김포공항을 드나들었고, 귀국한 직후엔 호텔과 쇼핑센터로 직행해 구석구석의 청소상태와 직원들의 근무자세를 점검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단돈 100원짜리 신상품이 나왔을 때도 직접 먹어보고 시판 여부를 결정하는 등 작은 일에도 완벽을 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kj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