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지금

이맹희, “건희와 ‘해원상생’ 마음으로 묵은 감정 모두 털어내고파”

재판부 앞으로 보낸 A4 5장 분량 장문의 편지 통해 화해의 손짓

[kjtimes=김봄내 기자]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화해의 손짓을 했다. 14일 삼성가 상속분쟁 항소심 결심재판에서 재판부 앞으로 쓴 A4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통해서다.

 

현재 이씨는 이건희 회장과 거액의 상속 소송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번 장문의 편지는 이날 오후 서울고법 민사14부(부장판사 윤준)의 심리로 진행된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 결심재판에서 그가 최후진술로 대신한 것.

 

이씨의 변호인이 읽은 편지에서 이씨는 “아버지 돌아가신 직후 건희가 한밤중에 찾아와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테니 조금만 비켜있어 달라고 하면서 조카들과 형수는 본인이 잘 챙기겠다고 부탁한 적이 있다”며 “11살이나 어린 막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속에서 천불이 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삼성을 지키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줬다”고 말했다.

 

또 “건희가 저희 가족들에게 한 일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동생만을 믿고 자리를 비켜줬던 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배신감, 엉클어져 버린 집안을 보면서 어떻게든 동생을 만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복원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지금 제가 가야하는 길은 건희와 화해하는 일”이라며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건희와 만나 손잡고 마음으로 응어리를 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0분 아니 5분 만에 끝날 수도 있는 일이며 저와 건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라며 “이제 '해원상생'의 마음으로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어 서로 화합하며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것이 삼성가 장자로서의 마지막 의무이고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상속소송 항소심 판결 선고는 다음달 6일 오전 10시로 결정됐다. 양측이 화해 의사가 있다면 언제라도 연락을 달라고 당부한 입장. 이에 따라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극적인 화해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음은 이씨의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공인으로서 집안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고 실망을 안겨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소라고 생각하며 진솔한 속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짧게나마 소회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경남 의령 농가에서 몸을 일으켜 삼성그룹을 창업한 아버지는 우리 7남매에게 너무나 위대하면서도 어려운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세운 삼성가 집안의 장자입니다. 삼성맨으로서 아버지를 도와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한국비료공장, 제일제당 공장, 삼성코닝, 삼성전관, 반도체공장 등 삼성그룹의 많은 사업을 추진하며 오랫동안 삼성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회사에서 제 역할이 커지면서 아버지 의견에 대항하는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시 아버지 의견에 반항하며 저의 생각이 회사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일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은 아버지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 무릎 꿇고 사죄드리지 못한 것이 큰 후회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철두철미한 분이셨고, 삼성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조직이 있음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고 소군과 가족들로 구성된 승지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을 뿐입니다.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통해 삼성이라는 조직을 끌어나가기 보다는 가족 간의 우애와 건설적인 견제를 통해 화목하게 공생하며 살라는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아버지에게 미움 받고 방황할 때도 가족은 끝까지 저를 책임지고 도와줬습니다. 지금도 가족에게 너무 큰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직후 건희가 한밤중에 찾아와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테니 조금만 비켜있어 달라고 하면서 조카들과 형수는 본인이 잘 챙기겠다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11살이나 어린 막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속에서 천불이 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삼성을 지키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줬습니다. 타지생활의 유일한 기쁨은 재현이가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고, 건희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늘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건희가 저희 가족들에게 한 일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동생만을 믿고 자리를 비켜줬던 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배신감, 엉클어져 버린 집안을 보면서 어떻게든 동생을 만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복원시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동안 동생을 만날 자리를 마련해 보려고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건희를 보면서 동생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성으로부터 상속포기하라는 서류 1장을 받게 되어 제 자신의 권리와 건희와의 관계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 아프고 부끄럽지만 재판이라는 어렵고 힘든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현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할 때 미행을 하고, CCTV로 감시하고, 제일제당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장손의 할아버지 묘사도 방해하고, 대한통운 인수하는 데 뛰어들어 방해하고, 이 재판이 시작되자 다시 재현이를 미행하고, 대한통운의 해외 물량을 빼는 등 그 동안 건희가 조카에게 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나열하는 것이 저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이 재판 도중에 저는 건희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재현이는 감옥에 갈 처지에 있고 저도 돈 욕심이나 내는 금치산자로 매도당하는 와중에도 이 재판이 끝나면 내 가족은 또 어떻게 될지 막막한 심정이라 저로서는 굴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화해를 통해서만이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건희의 절대 화해 불가라는 메시지를 받고 제가 제안한 진정한 화해라는 것은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해가 성사되더라도 과연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을 지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지금 제가 가야하는 길은 건희와 화해하는 일입니다. 제 나이가 83세이고 재작년에 폐암으로 폐의 3분의 1을 도려냈으며 최근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특별한 타입의 제 암 씨앗은 지금도 혈액을 타고 전이할 곳을 찾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하며 시한부 환자처럼 생명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누구보다 죽음에 한 발자국씩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난하며 말하는 ‘노욕’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릴까 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사죄하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과 아버지 유지조차 지키지 못한 장자로서는 죽어서 아버지 뵐 낯이 없습니다. 또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로 두 눈을 편히 못 감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화해라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건희와 만나 손잡고 마음으로 응어리를 풀자는 것입니다. 10분 아니 5분만에 끝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와 건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일본 타지의 외로움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지내온 가족입니다.

 

이제 ‘해원상생’의 마음으로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어 서로 화합하며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삼성가 장자로서의 마지막 의무이고 바람입니다.

 

이 재판에 대한 저의 진정성이 조금이나마 전달됐다면 노욕을 부리고 있는 이 노인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 질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진정한 화해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월 14일 이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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