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1925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故 구인회 LG 창업회장과 故 허을수 여사 사이 6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촌인 故 구평회 E1 명예회장과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같이 입학한 뒤 진수사범을 마치고 고향에 있는 지수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現 LG화학)에 이사로 합류할 때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당시 제자들 중에는 7선 의원을 지낸 故 신상우 전 해양수산부 장관,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회장 등이 있다. 신 전 장관은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구 명예회장의 별명을 밝히기도 했다.

진주공립고보 4학년이었던 1942년 5월 고향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하정임씨와 결혼했다.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에 이사로 입사해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구인회 창업회장은 구 명예회장을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게 하며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시켰다. 덕분에 구 명예회장은 현장에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창업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떴지만 창업주의 많은 형제가 건재하고 있어 세간에서는 럭키그룹의 2대 회장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1970년 1월 6일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구인회 창업회장과 처음부터 함께 럭키그룹을 일궈온 故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이 본인의 경영 퇴진과 함께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의 회장 추대를 제안해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으로의 승계가 이뤄졌다. 회장 취임 이후 1년간 삼촌인 故 구정회 사장이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구 명예회장을 보필했다.

'안정적인 성장'이라는 기본 방침 아래 화학사업과 전자산업을 양대축으로 삼고 각종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이뤄냈다. 석유화학, 정밀화학, 에너지 등 LG그룹의 큼지막한 사업 기반은 구자경 회장 시절 만들어졌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11개 계열사를 갖고 시작한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이임할 때까지 LG그룹의 변화와 도약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명예회장 취임 첫 해인 1970년 52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1994년 30조원을 넘어섰다. 수출액은 3100만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74배나 늘어났다.

1979년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 금성반도체를 발족했다. 금성반도체는 1985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1메가 롬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금성일렉트론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1990년 1메가 D램, 1991년 4메가 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만 70세가 되던 1995년 1월 럭키금성그룹의 사명을 LG그룹으로 바꾼 뒤 같은 해 2월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명예회장으로 있다.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으로 넘겨주면서 “신임 회장에게 모든 경영을 맡기고 앞으로 여의도 본사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회장직을 내려놓고 충남 천안으로 내려간 뒤 각종 유기농 재배에 취미를 들인 구 명예회장은 주중에는 천안에 머무르고 주말에만 서울 성북동 집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주 월요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출근하되 구본무 회장 집무실인 30층에는 발을 들이지 않고 32층으로 직행해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LG복지재단∙문화재단 업무만 보고 오후에 다시 천안으로 내려갔다. 2015년부터는 이 재단들 마저 구본무 회장이 이어받았다.

아버지 구인회 창업회장이 1956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발족한 ‘단오회’와 진주중 15회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단오회에는 故 김각중 경방 회장 등이 참여했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특유의 소탈함을 지녔다. 사업장이나 계열사 사무실을 즐겨 찾았는데 때로는 사전통보 없이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배우자 하정임 여사와 슬하에 4남2녀를 뒀다.

장남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삼성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가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제대 후 미국 애쉴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2년 김영식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딸이다. 구연경, 구연수 등 딸만 둘을 낳은 구 회장 부부는 2004년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씨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소탈한 모습을 보여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녀 구훤미씨는 19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사남 김화중씨와 결혼했다.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조흥은행에서 근무하다가 강세원 전 희성금속 회장의 딸 강영혜씨와 결혼했다. 사별 후 차경숙씨와 재혼했다. 1남1녀를 뒀는데 유일한 아들 구광모씨를 형에게 양자로 보내는 용단을 내렸다.

삼남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LG의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 김은미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차녀 구미정씨는 고 최화식 대한펄프 창업주의 아들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사남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2012년 조명기기업체 오렉스의 대표로부터 불공정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형사고소 당했다.

희성전자로부터 LCD부품 납품 제안을 받고 2009년 9월 생산공장을 지었으나 희성전자는 공장을 지은 뒤 2년이 지나서야 당초 제안한 규모에 훨씬 못미치는 양을 발주했고, 이 때문에 설비투자금 등 215억여원을 손해봤다는 것.

그러나 오렉스에게 구체적인 납품물량과 금액을 제시한 적이 없다는 희성전자 측 주장이 받아들여져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재정신청을 통해 진행된 재판에서 서울고법은 "오렉스와 희성전자, LG디스플레이 사이에 구체적 조건이 기재된 서면이 작성되지 않았고, 희성전자가 오렉스를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구 부회장은 조경아씨와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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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25년 4월 24일
직업: 기업인
직함: LG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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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구인회 

1907년 8월 27일~1969년 12월 31일 

LG그룹 창업주 

모 

허을수 

1907년~1986년 6월 13일 

 

누나 

구자숙 

1922년 

‘구양세’에서 개명 

남동생 

구자승 

1929년~1974년 4월 7일  

전 반도상사(現 LG상사) 사장 

남동생 

구자학 

1930년 7월 15일 

아워홈 회장 

남동생 

구자두 

1932년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남동생 

구자일 

1935년 

일양화학 회장 

여동생 

구자혜 

1937년 

 

여동생 

구자영 

1939년 

 

여동생 

구순자 

1943년 

 

남동생 

구자극 

1946년 

엑사이엔씨 회장 

배우자 

하정임 

1924년 9월 1일~2008년 1월 9일 

 

장남 

구본무 

1945년 2월 10일 

LG그룹 회장 

장녀 

구훤미 

1947년 

故 김화중 전 희성금속 회장 배우자 

차남 

구본능 

1949년 3월 26일 

희성그룹 회장 

삼남 

구본준 

1951년 12월 24일 

LG전자 부회장 

차녀 

구미정 

1955년 5월 7일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배우자 

사남 

구본식 

1958년 6월 28일 

희성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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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진주고등학교
진주사범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 명예박사
연세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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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럭키화학 이사(1950년)
금성 이사(1959년)
럭키화학 전무이사(1962년)
럭키금성그룹 회장(1970년)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1970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초대 대의원(1972년)
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1972년)
한국발명특허협회 회장(1979년)
고려중앙학원 이사(1980년)
한국산악회 12∙13대 회장(1982년)
동아일보 이사(1983년)
제18대 한국경제인연합회 회장(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명예회장(1989년)
보람은행 이사회장(1994년)
LG그룹 명예회장(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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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한국경영자상(1979년)
뉴밀레니엄창업대상(2000년)
국회 과학기술연구회 2002 국회대상 공로상(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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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LG 164만8877주(0.96%)
LG상사 3만2547주(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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