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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인물정보

[재계인물정보]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1955년 2월 5일 서울특별시에서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 사이 6남1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그해에 강성진 BNG증권 회장의 장녀 강신애씨와 결혼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2년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3년 두산건설 뉴욕지사에서 근무했다. 두산음료에서 1990년 이사, 1994년 전무를 맡았다. 1995년 두산동아 부사장,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부사장을 거쳐 1996년 OB맥주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그룹에서 부회장에 올랐다가 故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형제의난을 일으키자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가 2007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뒤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2009년 오리콤 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중공업 회장을 겸임했다. 형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에 이어 2012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해 4년간 두산그룹을 이끌었다. 2016년 두산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로 돌아와 회장직을 맡고 있다.

두산가 3세 중 막내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개인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박용만 회장을 끝으로 두산가는 3세 경영을 마치고 4세 경영에 접어들었다. 현재 두산그룹의 수장인 박정원 회장은 박용만 회장으로부터 두산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으며 4세 경영의 포문을 열었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2000년 한국-스페인 경제협력위원회에 한국측 위원장으로 있었다. 2009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2011년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사, 2012년 정동극장 이사장,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국경영교육인증원 이사장, 환경보전협회 회장, 2014년 스페인 명예영사, 국제상업회의소(ICC) 집행위원, 2016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있어 2012년 마리아수녀회 후원회장, 2013년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에 선임됐다. 같은 해 故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된 전문모금기관 ‘바보의나눔’에서 이사로 활동했다.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2012년부터 바보의나눔에 매년 성금 10억원을 전달해왔다.

1995년 두산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은 뒤 전략기획본부장, 두산중공업 회장, 두산그룹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두산그룹을 OB맥주 등 소비재 중심 사업에서 중공업 위주 사업으로 구조전환했다.

이를 위해 1996년 한국네슬레 주식(235억원), 한국3M 주식(900억원), 한국코닥 주식(500억원), OB맥주 영등포 공장(현 영등포공원∙1124억원), 1997년 음료사업부문(4322억원), 1998년 두산빌딩(690억원), 두산씨그램 주식(1275억원), 2001년 OB맥주(9100억원), 2006년 종가집김치(1050억원), 2008년 테크팩사업부문(4000억원), 2009년 주류사업부문(5030억원) 등 소비재 관련 사업을 쉼없이 매각했다.

기존 사업 부문을 팔아 마련한 자금을 바탕으로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3057억원),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3364억원),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1조6880억원)를 차례로 인수해 주력계열사로 키웠다.

이처럼 과감한 M&A는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2006년 발전소 보일러 분야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영국의 미쓰이밥콕(1600억원)을 인수했고 2007년 미국의 잉거솔랜드로부터 중장비업체 밥캣 등 3개 사업부문(51억달러)을 인수했다.

두산밥캣의 기업공개(IPO)에도 성공했다. 두산밥캣은 2016년 11월 18일 코스피에 상장돼 공모가 3만원보다 19.7% 높은 종가 3만5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발전 기조를 이어감에 따라 중공업사업부에서 원자력 및 화력발전 사업부문을 분할 매각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과감한 M&A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에 성공했지만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가 찾아오자 두산건설, 두산밥캣 등의 실적부진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2012년 조카 박정원 회장, 박지원 부회장과 함께 그룹 재무개선을 이끌어냈다. 2015년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광산장비를 생산하는 프랑스 자회사 몽따베르(1350억원), 2016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주식(3046억원),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부(1조1300억원), 두산DST 주식(6950억원), 두산건설 넥스콘사업부(1300억원) 등을 매각했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신입사원을 희망퇴직 대상으로 넣은 사실이 알려져 곤혹을 치뤘다. 두산이 내세웠던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과 경영철학 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직원을 절반가량을 희망퇴직 받기로 결정하면서 희망퇴직 대상에 20대 신입사원을 포함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당시 “건설기계시장이 위축되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해명했지만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1~2년차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했다.

2005년 7월 '형제의 난'이 발생해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놨다.

故 박용오 전 회장이 검찰에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 등 진정서를 제출하며 ‘형제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두산산업개발이 고려산업개발과의 합병 때 분식으로 인해 합병비율 산정이 불공정하게 이뤄져 총수 일가가 부당 이득을 챙긴 점과 합병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췄다는 의혹,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 시 오너 일가가 신주인수권 중 상당수를 삼화왕관과 두산포장 등 계열사에 매각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소액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일어났다.

검찰은 10여년간 회삿돈 326억원 횡령, 비자금 366억원 조성, 두산산업개발의 2838억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박용오∙박용성∙박용만 세 형제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2006년 2월 1심에서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80억원,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필요성’을 천명한 뒤 법원이 횡령∙배임 등 경제적 악영향이 큰 대형비리 사건을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가운데 발생한 재벌기업 비리 사건이었다.

그러나 1심 판결이 재벌기업 총수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3∙5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여론이 일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역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라며 비판하고 나섰지만 2006년 7월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이 가족 및 그룹과 결별하고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두산가 형제의 난은 마무리됐다. 박용만 회장은 형 박용성 전 회장과 함께 상고를 포기하고 2007년 2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돼 경영에 복귀했다.

소탈한 성격으로 사원급 직원들과 저녁식사자리도 종종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오너일가답지 않게 SNS의 하나인 트위터를 즐겨해 23만명의 팔로워를 두고 있다. 그가 트위터에 게재한 글의 수만 2만건이 넘는다.

SNS를 즐겨하는 만큼 2014년 아이스버킷챌린지가 유행일 때 재계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재계에서 유명한 얼리어답터다.

야구경기 관람을 좋아한다. 프로야구구단 두산베어스의 경기에 종종 응원하러 간다. 그의 트위터에도 야구와 관련된 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맥주 서너모금 이상을 마시지 못하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술자리에 어울리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에 주량을 늘렸다. 그러다 술이 좋아져 찾아 마시기까지 했고 자연스럽게 재계에서 주당으로 불렸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저렇게 술 마시다 하느님이 얼른 데려가시겠다"는 말을 엿듣고 줄을 줄이고 거의 마시기 않게 됐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회식 때 술을 권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과음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실바노’다.

배우자 강신애씨와 슬하에 2남을 뒀다.

장남 박서원 두산 전무는 1979년 7월생으로 엘리트코스를 밟는 일반적인 ‘재벌가 자제’와 달리 두산가의 문제아로 불렸다. 단국대학교를 다니다가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가서도 경영학, 사회학, 기계공학 등 6번의 전과를 한 끝에 미국에 있는 미술대학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에 입학했다. 2006년 동기 4명과 함께 빅앤트를 설립한 뒤 콘돔사업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 오리콤에서 최고광고제작책임자 부사장. 2015년 두산 전무에 올랐다.

박 전무가 2005년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구원희씨와 결혼하면서 두산가와 LG 구씨가는 두번째 사돈을 맺었다.

차남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1985년 태어나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첫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2013년 두산인프라코어에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해 2014년 부장으로 승진, 2017년 상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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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55년 2월 5일
직업: 기업인
직함: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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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박두병 

1910년 10월 6일~1973년 8월 4일 

두산그룹 초대회장 

모 

명계춘 

1913년 1월 30일~2008년 9월 16일 

전 두산산업 감사 

형 

박용곤 

1932년 4월 17일 

두산그룹 명예회장 

누나 

박용언 

1933년 

 

형 

박용오 

1937년 4월 29일~2009년 11월 4일 

전 성지건설 회장 

형 

박용성 

1940년 9월 11일 

전 두산중공업 회장 

형 

박용현 

1943년 9월 16일 

중앙대학교 이사장 

남동생 

박용욱 

1960년 4월 3일 

이생그룹 회장 

배우자 

강신애 

1955년 9월 3일 

강성진 BNG증권 회장 장녀 

장남 

박서원 

1979년 7월 

두산 전무, 오리콤 부사장 

차남 

박재원 

1985년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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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경기고등학교 졸(1973년)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1978년)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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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한국외환은행(1977년)
두산건설 뉴욕지사(1983년)
동양맥주 차장
두산식품 부장
0두산음료 이사(1990년)
두산음료 그룹기획조정실 부실장 전무(1994년)
두산동아 부사장(19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부사장(1995년)
OB맥주 부사장(1996년)
한국-스페인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장(2000년)
두산중공업 부회장(2005년)
두산그룹 대표이사 부회장(2005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부회장(2005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2007년)
오리콤 회장(2009년)
두산건설 회장(2009년)
두산중공업 회장(2009년)
두산 대표이사 회장(2009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2009년)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이사(2011년)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사(2011년)
두산그룹 회장(2012년)
정동극장 이사장(2012년)
마리아수녀회 후원회장(2012년)
바보의나눔 이사(2013년)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2013년)
제21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13년)
한국경영교육인증원 이사장(2013년)
환경보전협회 회장(2013년)
스페인 명예영사(2014년)
국제상업회의소(ICC) 집행위원(2014년)
국립오페라단 이사장(2016년)
DLI 대표이사 회장(2016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2016년)
서울대학교 이사(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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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제27회 상공의날 은탑산업훈장(2000년)
한국협상학회 대한민국협상대상(2001년)
스페인 과학기술부장관 시민훈장(2003년)
글로벌CEO 대상(2007년)
벨기에 레오폴드2세훈장(2009년)
제39회 상공의날 금탑산업훈장(2012년)
한국의광고PR인 올해의 카피라이터상(2012년)
코리아소사이어티 밴플리트상(2014년)
이탈리아 친선공로훈장(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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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두산 77만6155주(3.84%)
두산건설 1만6991주(0.02%)
두산중공업 9768주(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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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신동빈 숨 가쁜 해외경영<엿보기> [KJtimes=김봄내 기자]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숨 가쁜 해외경영이 재계 안팎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특히 그의 글로벌 광폭 행보는 자신만의 ‘뉴 롯데’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내수경영에 치중했던 부친 신격호 창업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작년부터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는 신 회장의 역동적 해외경영 행보는 롯데의 해외사업 확장뿐 아니라 평창올림픽의 성공에 일조하고자 하는 그의 개인적 신념도 한몫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4일 재계와 롯데그룹에 따르면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며 2세 체제를 굳힌 신 회장은 연초부터 프랑스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 22일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 열린 '프랑스 국제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한 것이다. 신 회장은 프랑스 정부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립 국무총리 등을 만났다. 그리고는 현지 투자 방안과 다음 달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2007년 한국과 프랑스 간 경제 및 문화 교류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를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