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박두병 회장에게 일명 골프3인방이 있었다. 김용관·손기원·민용규였다. 박 회장의 골프이야기는 3인방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1929년 3월 나란히 경성상고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수업도 같이하고 행동도 같이 했던 의리파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의리가 어느 정도였냐면 경성상고 1학년 때에 월미도로 소풍갔을 때 ‘죽을 때도 같이 죽자’고 의리 맹세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은 결혼식 때는 서로가 들러리를 섰고, 6. 25때는 달달 거리는 군용트럭으로 함께 피난길에 오를 정도로 동고동락 했다.
이들 4인방 중 골프를 가장 일찍 시작한 사람은 박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친구 3명을 서울 군자리 코스에 불러 모아 골프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골프에 입문 시켰다.
이들은 서울컨트리가 지금의 경기도 고양군으로 옮길 때 까지 대략 1000번 이상 라운딩 했을 정도로 실과 바늘처럼 어울렸다고 한다.
4인방의 골프실력은 비슷했는데 손기원씨와 박 회장이 싱글에 가까웠고 민용규씨는 핸디가 18, 김용관씨는 20 정도였다.
이들은 게임이 끝나고 나면 서울컨트리 인근 광나루 술집에서 한 잔의 술을 걸치며 과거의 학창시절로 돌아갔는데 평소 얌전하던 박 회장은 3인방 친구들과 골프를 한다든지 술을 마실 때면 큰 소리로 떠들고 파안대소를 했다.
이 4인방은 특히 골프를 할 때면 각각의 우스꽝스러운 단점을 흉내 내면서 진한 농담을 하는 등 캐디들은 이들과 함께 도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길 정도였다.
의리맨 박 회장은 한 번 신의를 지키면 끝까지 지켰는데, 합동통신을 인수 할 때 박 회장은 한국일보 부회장을 역임한 신영수씨를 내세웠다.
신영수씨는 신문기자 1호 골프였는데 일찍이 골프를 해온 탓에 박 회장은 물론 장기영씨, 김성곤씨 등과 함께 골프를 하면서 두터운 의리를 맺어온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평소 골프를 하면서 신씨의 매너와 에티켓에 매료된 바 있는 연강은 그 막대한 인수 자금을 영수증도 없이 신씨에게 맡기는 등 큰 폭, 큰 의리를 보여 왔다.
그만큼 박 회장은 한 번 믿으면 의리의 폭이 넓고 깊어 그의 신의에 매료돼 오늘날 두산그룹 하면 신의 있는 기업, 인화를 기업문화의 요체로 삼고 있는 기업이라는 말은 이때부터 나왔다.
박 회장은 “기업의 성패는 결국 인력관에 달려 있다”며 자신이 믿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배를 타도록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