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병철 대기자]‘두산하면 OB맥주’, ‘OB맥주 하면 연강 박두병 회장’을 연상케 한다. 다름 아닌 박 회장은 OB맥주 창업자였다.
박 회장 부친은 일제 때 거부인 박승직씨였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입지해 서울 종로 4가에서 대가를 이룬 자수자족한 인물이었다.
부친은 종로에서 박 회장을 낳자 처음부터 사업가로 키울 작정이었다. 때문에 경성상고를 졸업케 한 후 조선은행에서 근무했고, 일치감치 골프를 시켰는데 이는 사업가로 육성시키기 위한 의도된 과정이었다.
박 회장은 조선은행에 근무하면서 장기영·백두진·김영찬씨 등을 만나 교우관계를 맺었는데 그 인연이 죽을 때가지 이어졌다.
지금의 두산이라는 명칭이 만들어 진 것은 두산 창업 50년째인 1946년이었다. 창업주인 박승직씨는 아들에게 “네 이름 가운데 자인 ‘斗’ 자를 넣어 두산상회라 하라. 또 쌀이 쌓여 산을 이루듯이 사업이 번창하도록 하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두산’이라고 지어주었다.
세월의 아이러니일까. 1896년 8월 1일 서울 종로 4가 배오개에 설립된 ‘박승직 상점’은 지금의 동대문 자리로 서민의 장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1998년 말 그 자리로 두산그룹이 사옥을 이전했으니 두산은 결국 창업정신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싶다.
그런 박 회장이 두산 OB맥주 회장 때문이었는지 골프장에는 OB맥주가 넘쳐흘렀다. 마땅한 청량음료가 없던 시절 두산이 서독에서 직접 수입한 ‘OB시날코’ 이라는 맥주가 인기가 있었다.
박 회장은 맥주만큼은 무료로 제공해 회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연강은 처음 나온 맥주는 일단 골프장으로 가져와 회원들에게 시음을 하도록 해 그 반응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반응이 좋으면 대대적인 생산을 했고, 신통치 않으면 우리네 입맛에 맞게끔 다시 맛을 내는 등 그 열의가 대단했다.
맥주의 인기 덕분에 박 회장은 1950년대 말부터 서울컨트리에서 OB컵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서울컨트리가 인정한 공식대회로 5. 16 직후에 없어진 대회지만 대회가 열릴 때마다 많은 회원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OB컵 대회는 ‘대회 중의 대회’로 이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필드에는 맥주 통으로 꽉 차고 종업원들은 맥주를 대접하기에 바빴다. 바로 이 OB컵 대회는 우리나라 최초 스폰서 경기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