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토크

“확인된 좋은 이야기만 전해라”

 

성공한 사람 중에는 권모술수에 능하기보다는 사람을 자산으로 여기고 소중히 다루는 이가 많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다 보니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억울하게 배신이나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타인을 배신하거나 모함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타인을 음해하거나 죄인으로 몰아 권력을 쟁취하던 역사를 볼 수 있다. 당파싸움으로 번지고 가족을 몰살시켰던 것을 보면, 혹시 모를 위험 요소인 불씨를 제거해 큰 불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을 없앤 것이다.

 

연산군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배신, 모함이 없어진 게 아니다. 자신을 너무 보호한 나머지, 혹은 소속된 회사를 위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 때문에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마녀사냥의 리더가 되지 마라

 

왕따,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되어 학교, 회사를 그만두는 예도 있고, 그 고통을 못 이겨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접하게 된다.

 

어떤 사람에겐 그럴 수도 있지라며 견딜 수 있는 상황이나 말일지라도 막상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내야 하는 당사자가 되면 해결할 수 없는 일’, ‘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 정도가 점점 강해지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 마녀사냥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가 괴롭힌 사람이 생명을 포기한 다음에 무덤 앞에 찾아가서 사과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파면이나 죽음에 자신이 연관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가기가 어디 쉬운가?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이 발 뻗고 잘 수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있듯이 독하고 악한 것이 본성인 사람이 아니라면 늘 명치 끝에 뭔가 걸린 느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감싸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마녀사냥 하듯 코너로 모는 주동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상황이 반전되어 자신이 그 주인공으로 몰리게 될 수도 있다.

 

동조자는 매력 없다

 

싸우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모함하거나 음해하는 사람이 밉지만, 그 옆에서 바람 잡는 사람이 더 얄미운 법이다. “어머 그러게 말이에요”, “또 다른 말도 있어요”, “저도 많이 들었는데 사실이라니까요”, “저러고 어떻게 회사를 나오죠?” 같은 동조의 말로 부채질하는 사람은 코너에 모는 주동자보다 더 밉다.

 

그래서 만약 주범자와 코너에 몰린 사람이 화해하게 되어도 동조자는 화해할 수 없고, 오히려 동조자가 코너에 몰리는 반전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난 먼저 그런 말 하지 않았어요. 과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들어준 것뿐인데요라고 변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해해줄까? 아니다. 동조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더 코너에 몰리게 했다는 생각만 들게 할 것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 어찌 되겠는가? 불을 끄려 노력하지 않고 부채질하는 사람은 자칫하면 자기 몸에도 불이 붙을 수 있다. 옳은 일이라도 누군가를 막다른 상황으로 몰면 이후엔 자신이 오히려 덤터기를 쓰게 될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무심코 발로 찬 돌멩이가 누군가의 머리를 때려 다치게 만들 수도 있고, 그 돌이 자신의 얼굴로 떨어져 병원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현명하고 덕을 갖춘 사람은 남에 관해 확인된 사실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손해 볼 상황이 걱정된다면, 절대 말하지 않는다.

 

상대를 막다른 상황으로 몰거나,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고 즐기지 마라. 누구나 막다른 상황에 몰려 정신적인 고통을 당할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이 반대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절대로 남을 희생시키는 데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지 말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정혜전의 오피스토크는

 

도서출판 비전코리아가 출간한

 

<착한 말, 착한 대화>

 

내용으로 연재합니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