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현수 기자]일본 방송 출연진들과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이 지난달 발생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 범인을 향해 '막말'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난이 또다른 유사 사건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와사키 용의자가 흉기 난동을 벌인 당일인 지난달 28일 오후 한 민영방송 생활정보 프로그램 진행자인 안도 유코(安藤優子)는 "혼자서 목숨을 끊으면 끝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발언했다.
같은 프로에 출연한 기타 하루오(北村晴男) 변호사 역시 "죽고 싶으면 혼자서 죽으라고 말하고 싶어지네요"라고 맞장구쳤다.
또 만담가인 다테카와 시라쿠는 같은 날 다른 민방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둔 부모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강조하며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주세요. 그런 사람은 말이죠"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런 취지의 발언과 글이 기사 댓글 형태로 자주 등장하는 중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런 비난이 또 다른 자살을 방조하거나 유사 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비영리(NPO)법인 '홋토(후유라는 뜻의 감탄사) 플러스'의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 대표는 이런 민감한 시기에 "죽으려면 폐를 끼치지 말고 죽어라"라고 하는 식의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의 영향력은 엄청나다"며 "혼자서 죽으라고 하는 것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후지타 대표는 실제로 생활보호를 신청하려던 한 30대 남성이 인터넷에서 '젊은 사람이 교활하다'라는 비판을 들은 후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4일 만에 발생한 전직 차관 아들 살해사건도 '히키코모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막말을 쏟아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다.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6) 농림수산성 전 사무차관(차관급)은 지난 1일 도쿄도 네리마(練馬)구 자택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장남 에이이치로(英一郞·44)를 흉기로 찔렀다.
구마자와 씨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집에 사건 당일 학교 운동회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고 아들이 화내는 것을 보고 타일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심한 말싸움을 했고, 아들을 살해하게 됐다.
아사히신문은 "구마자와 씨가 아들의 분노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분출돼서는 안 되겠다 느끼고 수시간 후 직접 흉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메모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즉, 구마자와 씨는 가와사키 사건을 계기로 TV나 인터넷에서 '히키코모리'를 겨냥해 쏟아진 막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후지타 대표는 "사건 배경에는 용의자를 둘러싼 환경이 있다"며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의료나 전문인력이 부족한 복지 등 지원 체계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 씨 역시 막말이 범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죽으라는 것은 최후통첩과 같은 것"이라며 "절망감을 안겨 자포자기 상태로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은 지난달 28일 일본 가와사키(川崎)시에서 발생한 50대 남자 이와사키 류이치(岩岐隆一·51) 소행으로, 가해자는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어린이 등을 향해 흉기를 마구 휘둘러 20명을 살상하고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에 자해해 숨졌다.
정확한 범행동기는 미궁에 빠졌지만, 일본 경찰과 언론은 범인이 80대 삼촌 집에서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점을 근거로 사회를 향한 막연한 불만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