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을 되돌아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이 중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놨던 고(故) 김용균씨의 산업재해 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김용균법’이 오는 1월 16일 시행되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그러나 노동계는 ‘김용균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의 도급 제한이 일부 작업장에만 적용돼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게 그 이유다. <KJtimes>는 ‘김용균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평화노무법인 현능섭 노무사를 만나 산업안전의 허와 실을 짚어보고 실질적인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KJtimes=견재수 기자]20대 청년이었던 김씨는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김씨 사고를 계기로 산업현장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산업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허술한 안전시스템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국민 여론에 떠밀리 듯 28년 동안 잠자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일명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15일 공포됐다.
“산업현장 관리감독과 (원청에 대해) 형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산재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그중 최우선적으로 작업 현장의 기계나 도구에 대한 설비 안전점검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안전시설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과 제도만 뜯어 고쳐서는 사후약방문에 그칠 뿐이다.”
평화노무법인 현능섭 노무사는 1월 ‘김용균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속빈강정에 불과할 뿐 산재 사고를 막을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하고 공장 내 컨베이어 밸트에 끼어 사망하는 등 대부분의 사고 원인이 안전설비 미비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현 노무사는 “김용균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만 봐도 안전설비의 중요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며 “당시 원청인 서부발전은 비용 3억원을 이유로 28차례에 걸친 설비개선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용균법’ 시행을 계기로 사업주에 대해 형사 가중 처벌(최고형량 7년에서 10년 상향)과 벌금형 상한(현행 1억 원에서 10억원)액을 대폭 높였다고 하더라도 사법부가 제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실제 산재 사고의 경우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사업주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벌금액이) 적다보니 (사업주들이) 돈이 많이 들이가는 안전설비 투자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며 “(법 집행자들이) 처벌을 강력하게 해서 (사업주들이) 안전설비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안전장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 33조(유해하거나 위험한 기계‧기구 등의 방호조치 등)에 따르면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필요로 하거나 동력(動力)으로 작동하는 기계‧기구의 경우 유해‧위험 방지를 위한 방호조치를 하지 아니하고는 양도, 대여, 설치 또는 사용에 제공하거나 양도‧대여의 목적으로 진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해‧위험방지를 위한 방호조치 기계나 기구는 금속절단기, 지게차, 포장기계(진공포장기, 랩핑기만 해당) 등이 포함된다. 이를 위반 시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 68조(벌칙)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처럼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사용되는 기계‧기구에 대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의 경우 미약한 처벌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보니 기업들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을 투자해서 안전설비를 갖추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노무사는 “산재사고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계설비에 대한 안전점검이 우선적으로 이뤄진 뒤에야 관리감독을 말하는 게 순서”라며 “(‘김용균법’ 시행으로 도급을 제한한다고 하는데 작업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하청을 안줘도 원청에서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인데 기계만 안전장치가 잘 돼 있어도 사망이라던지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하고) 사후 처벌을 하면 뭐하나 이미 사고가 나버렸는데 큰 의미가 없다”면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 최선의 길이고 예방적인 차원에서 관리 감독하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위해한 물품을 다룰 경우 방독면을 착용한다던지, 절단기를 다루는 작업의 경우 센스 같은 것이 부착 돼 사람 손 같은 물체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멈추게 안전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그런 다음에야 안전교육 등이 이뤄져야 앞뒤 순서가 맞다”고 주장했다.
안전설비 다음으로 중요한 게 기계를 잘 다루는 숙달된 직원이 상시 배치돼 있어야 한다는 게 현 노무사의 설명이다.
실제 김용균씨 산재사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산업현장에서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22일 충북 제천시 송학면에 소재한 시멘트공장 내 대형팬 안에서 설비 점검을 하던 30대 노동자 박모씨 사망사고 역시 낡고 위험한 기계 앞에서 홀로 근무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박씨는 동료가 없는 상태에서 혼자였고 폐기물을 태워 분쇄 작업하는 기계(팬)를 작동시키기 위해 작업반장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점검하던 중에 팬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에 따르면 사고발생 시간대로 추정되는 22일 오전 10시경부터 정오 12시 30분경까지 회사가 박씨의 사고 유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2인 1조 근무 규정만 제대로 지켰다면 박씨 옆에 작업반장이나 숙달된 직원이 함께 있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현 노무사는 “법, 제도적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하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산재사고를 막을)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처벌 규정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벌금이 아니라 실형 같은 게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 사고가 난 사업장에서 제차 사고가 발생하면 실형 같은 무거운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제도가 잘 돼 있어도 처벌 규정이 약하면 안전이 허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가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악순환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 당국의 산재 예방 의지에 의문 부호를 던졌다.
한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8년 한 해 214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중 사고 사망자는 971명, 질병 사망자는 1171명이다. 이 통계만 놓고 본다면 하루 6명의 노동자가 죽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21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하루 평균 2.47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