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 청년들이 취업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해외 취업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이 해외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과 가장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경제대국이라는 인식이 이 같은 현상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들 중 상당수는 국내 해외 취업 알선 회사를 통해서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일본 회사에서 구인 의뢰가 들어오면 국내 취업학원 등에서 취업준비생을 모집해 일본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적합한 인재를 소개 해주고 있다.
해외 취업 알선 업체 중에는 ‘정부산하 취업센터’가 대표적이며 그 외 민간 업체들도 다수 있다. 이 같은 취업센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일본에 건너가 취업을 하거나 워킹 홀리데이 형태로 취업하기도 한다. <KJtimes>는 2년 전 취업센터를 통해 일본의 한 국제공항에 파견직으로 취업해 2년 동안 근무한 한 구직자의 일본 회사 근무 경험담을 통해 일본 취업의 현주소를 들어봤다.(인터뷰에 응한 당사자의 요청에 의해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했다. 아울러 인터뷰 내용이 일본 전체 회사의 사례라기보다 일부 일본 회사의 사례일 수 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주>
[KJtimes=견재수 기자]김가을(가명·여·29)씨가 일본 취업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 2017년 3월이었다. 국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일본어 공부에 매진을 했다고 한다.
이후 일어를 전공한 특기를 살려 국내 관련 회사들을 대상으로 취업을 준비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공과 전혀 무관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만 없었던 그녀는 취업이 힘든 한국을 벗어나 일본행을 선택했다.
평소 일어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취업센터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일본의 한 국제공항 지상직에 취업했다. 한국 회사에서 파견된 파견직이었지만 일본이 자신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기회의 땅’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한국에서 함께 간 동료들과 타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극복해야 할 과제는 ‘직장 내 이질감’…경직된 문화도 문제
외국 취업생들 중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필리핀, 대만, 스리랑카 등 아시아계가 소수를 차지했다. 나머지 절반 정도가 현지 일본인이었다.
김씨는 외국에서의 첫 직장 생활이다 보니 나름 기대감이 컸다고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직장 내 이질감이 극복해야할 첫 과제였다.
그녀는 “한국은 5G 이동통신 등이 상용화되고 무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데 비해 일본이 IT 강국인지 의아할 정도로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어 “흔히 일본하면 첨단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생각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자동 티켓 발권기 같은 무인 자동화 기기가 없고 대부분의 업무가 수작업으로 진행됐다”며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일일이 기록하다보니 처음엔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일본의 경직된 직장 문화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김씨는 “(일본 직원들이) 메뉴얼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틀에 박힌 업무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졌다”면서 “유연성이 발휘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었고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매우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문화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보다 한국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더욱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업무 방식은 어느 정도 적응하면 숙달되겠지만 한국인들에게 유독 냉랭하게 대하는 차별이 가장 참기 힘들었고 심지어 사내에서 한국말도 못하게 했는데 다른 아시아계 직원들은 자기 나라말을 사용해도 터치 하지 않았다”며 “이 정도면 어느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예로 공항 내 다른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한국인이 있었는데 일본 직원들 보다 일도 열심히 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 났지만 승진이 되지 않아 결국 2년을 고생만하다 회사를 그만 뒀다”면서 “모든 일본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업무를 보다가 똑같이 실수를 해도 일본인 직원들에게는 조용히 지적하고 넘어가는데 비해 한국인 직원이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손님이 앞이 있든 없든 나무라기 일쑤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한 번은 일본인 직원이 실수를 했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필리핀 직원을 지점장한테 올려 보내 사과를 하도록 시킨 경우도 있었다”면서 “잘못을 필리핀 직원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고 일본 내 인종차별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같은 일본인들의 차별과 냉대도 힘들었지만 타국에서의 외로움은 직장 생활 내내 힘든 고통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같이 입사한 한국인 동료들이 있었지만 각자 거주지가 나눠져 있고 근무 시간이 다르고 밤과 낮이 바뀌는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퇴근하면 항상 혼자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렇다면 돈은 많이 모았을까. 숙소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애초 취업을 하면 돈을 모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던 목표를 접어야만 했다고 한다.
김씨는 “40~50만원에 달하는 숙식비를 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고작 수십만원 정도”라며 “세금으로 빠져 나가는 돈도 생각했던 것 보다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는데 한국에서 취업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면서 “이곳에서 경력을 쌓으면 나중에 커리어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차별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버텼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지난 12월 초 한국에 돌아왔다. 일본에서 보낸 2년을 되돌아보는 현재 심정은 어떨까.
김씨는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한국 내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일본 관련 업종에 취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취업이 안되면 다시 일본이나 해외 취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그녀는 끝으로 일본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회사인지를 잘 파악해서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단 취업을 하고 보자는 섣부른 행동은 결국 고생만 하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귀국을 결심하게 되기 십상”이라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기회의 장? 악몽의 시간?…신중한 판단 필요한 시점
김씨의 사례처럼 바늘구멍인 한국 취업난을 피해 일본에서 취업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17년 일본 기업의 외국인 고용 현황'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5만5926명에 이른다. 5년 전(2012년 3만1780명)에 비해 76% 늘었을 정도로 일본 취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정부도 청년 고용 한파를 타개하기 위한 타계책으로 ‘일본 취업’ 알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취업한 일부 한국인 청년들 중에는 김씨의 사례처럼 차별과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용한파 타개를 위해 청년들을 무작정 해외 취업의 길로 내몰기보다는 현지의 사정을 면밀히 파악해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나 취업센터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일본 취업을 목표로 도전하는 한국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상처를 안은 채 돌아올 수 있는 악몽의 시간이 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생각과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에 일본 취업에 도전하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