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벼슬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는데 매관매직을 중개하던 한 남자가 황발이를 부잣집 주인의 이름으로 착각하고는 매관매직을 일삼던 관료를 꼬득여 황발이에게 '감역관'이라는 벼슬을 내리게 했다.
황발이가 개인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 남자는 과부를 찾아가 벼슬을 받은 대가로 5천500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과부는 "덕이 크신 임금님이 계셔서 하찮은 가축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니 내가 벼슬을 한 것보다 더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며 돈을 내주고 자기 집 개를 '황 감역'이라고 불렀다.
이 기막힌 이야기는 한말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윤효정(1858-1939)이 쓴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에 나오는 내용이다.
윤효정은 "이렇듯 매관매직이 개에게까지 미쳤으니 참으로 웃지 못할 기막힌 일이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신간 '대한제국아 망해라'(다산초당 펴냄)는 '풍운한말비사'를 현대어로 편역한 것이다.
윤효정은 이 책에서 대한제국이 단순히 일제의 침략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부패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모습도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나라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명성황후는 벼슬자리를 판 돈으로 연회를 즐기고 자기 소생의 원자를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해 갖은 모략을 꾸미는 인물로, 대원군은 정치권력을 위해서라면 친형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냉혈한으로 그려져 있다.
박광희 편역. 420쪽. 1만8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