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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1970년대 연합적군 사건 주범 옥중 병사

1971∼1972년에 일어난 '연합적군 사건' 당시 신좌익 운동 동료를 살해한 죄로 사형이 확정된 나가타 히로코(永田洋子.65)가 5일 오후 10시6분 도쿄구치소에서 숨졌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이 6일 보도했다. 사인은 지병인 뇌종양에 의한 다발성 장기 기능 부전으로 추정된다.
  도쿄 출신인 나가타는 1963년 교리쓰(公立)약대(2008년 폐교)에 들어간 뒤 좌익운동에 뛰어들었고, 연합적군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내부 투쟁 끝에 1971년 8월 동료 2명을 살해한 지바(千葉)현 '인바누마 사건'과 1971년12월∼1972년 2월에 군마(群馬)현 하루나(榛名)산 등지에서 일어난 '산악 기지 사건' 등에 관련됐고, 1972년 2월 체포됐다. 산악기지 사건 당시에는 '총괄'이나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동료를 구타한 뒤 극한의 산중에 버려두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여성 4명 등 동료 12명을 살해했다.
  나가타는 연합적군의 또 다른 간부인 사카구치 히로시(坂口弘.64)와 함께 재판을 받았고 1993년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재판 도중 외국으로 도주한 동료인 한도 구니오(坂東國男.63)가 잡혀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재심을 요청하는 등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였다.
  재판 도중 동료를 린치해 살해한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한 '16명의 표석' 등 저서를 펴내 화제가 됐다. 1984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적군파 사건으로 17명이 기소됐지만 사형이 확정된 것은 나가타와 사카구치 등 2명이다. 연합적군파 최고 지도자였던 모리 쓰네오(森恒夫)는 1973년 1월 재판 도중 도쿄구치소에서 자살했다. 연합적군 사건으로 일본의 신좌익 운동은 사실상 궤멸했고 이후 일본의 우경화가 촉진된 것으로 평가된다.도쿄=연합뉴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