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지난 3월 대법원이 ‘김치·와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이호진 전 회장의 개입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휘슬링락CC 회원권 강매 및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해당 혐의와 관련 “대기업 계열사 전체가 총수의 사익편취를 위해 조직적으로 동원된 점과 경영기획실의 지휘에 의한 불법 행위라는 점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17일 오전 경제민주화시민연대, 금융정의연대, 민생경제연구소,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참여연대,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한국투명성기구 등 노동·시민사회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배임 혐의 고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태광그룹은 2015년 경부터 경영기획실을 통해 전체 계열사의 하청·협력사에 거래계약 조건으로 이호진 전 회장의 개인회사인 휘슬링락CC 골프장의 회원권 매입을 강요해 현재까지 담합을 이어오고 있다”며 “이는 총수 개인의 사익편취를 위해 대기업의 전 계열사를 동원한 배임 행위이자, 다수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이중계약과 담합에 연루된 중대한 불법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호진은 2016년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인 ㈜티시스의 소유주로서, 산하 기업인 휘슬링락CC를 개인 소유하고 있었다”며 “2016년 6월, 태광그룹 주요 계열사 9개는 경영기획실 주도로 전 계열사 협력업체에 1개 계좌당 13억원에 달하는 휘슬링락CC 골프장 회원권 구매를 강요하고, 이를 수락한 협력업체에는 장기 계약과 독점공급 등 이익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10월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에서 작성된 내부문건 ‘입회금명세서 총괄’에 따르면, 휘슬링락CC 계좌 총액 2089억 2428만 5622원 중 자체 분류로 계열사의 ‘특별 관리 협력업체’를 통한 규모가 전체 252개 회원권 계좌 중 79개(31.35%)이며, 배임 혐의 금액은 총 1011억 원이다. 해당 문건 표기(비고란에 표시된 영문 'S')에 따르면, 경영기획실의 회원권 강매는 325억원(32.15%)이며, 전체 계열사 강매 내역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내부문건 ‘회사별 계약 현황’에 따르면, 동원된 협력업체는 태광그룹 9개 계열사에 걸친 12개사로 보안, 가구, 복사기, 인쇄, 여행 등 기업 사무 계약의 실질적 업종을 총망라하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는 “이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의 계약 현황이며, 현재에도 회원권 소유 업체와의 이면계약이 태광그룹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KBS 보도(9층 시사국. ‘총수님의 골프왕국’ 2023년 4월 12일)에 따르면, 대부분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이 거래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시받은 계열사는 해당 업체와 계약을 하고 업체는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하는 구조였다.
태광그룹이 한 가구업체와 체결한 업무협약서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업체의 사무 가구를 총 90억원 규모로 발주할 것을 약속하고, 계열사에 6년간 독점공급을 보장했으며, 연 발주 금액이 부족할 경우 차년도 추가 발주로 이익을 보전하는 대신 가구업체는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하도록 했다.
또 다른 업무협약서이 경우 기존 서비스 업체 변경에 따른 위약금을 태광이 부담하거나, 회원권을 사면서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의 절반을 태광이 부담하는 등 협력업체는 이익을 얻지만, 피해가 계열사에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즉, 계열사들이 협력업체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보전해 주면서 손해를 감수하도록 하고, 이호진 총수 일가에게 사익 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게 노동·시민사회의 주장이다.
이들 단체는 “태광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강요된 배임 행위는 ㈜티시스뿐만 아니라 당시 휘슬링락CC 대표이사였던 김기유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이호진 전 회장은 김기유와 같이 공모해 계열사 협력업체에 그룹 계열사 전체 일감을 몰아주면서 장기간 일정규모의 매출을 보장하는 대신 골프장 회원권을 강매해 제3자인 ㈜티시스가 이익을 얻게 했다”면서 각 계열사로 하여금 불필요한 장기계약을 체결해 손해를 입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되며, 이로 인한 배임액이 1000억 원에 달하므로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된다.
태광은 KBS 인터뷰에서 협약서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가구업체와의 업무협약서는 구속력이 없는 의향서이고, 인쇄업체들은 회원권 구매 이전부터 오래 거래한 업체로 거래처 영업용으로 회원권을 구매한 것”이라면서 “각 해당 업체와의 거래는 회원권 구입여부와 상관없다”고 밝혔다.
노동·시민사회는 “이 업체들이 업무협약서를 체결한 날짜와 골프장 회원 명부상 입회일을 비교해 보면 빠르게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이틀 뒤, 대부분은 한두 달 사이에 골프장 회원권을 매입했다”며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태광의 답변은 변명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룹 경영기획실이 총수의 사익편취를 주도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욱이 이 시기는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기간이며, 김기유가 김치·와인 일감 몰아주기와 ‘골프장 상품권’과 관련한 배임 혐의를 받은 시기이므로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의 죄질은 더욱 나쁘다고 할 수 있다”며 “특히 이호진 전 회장은 병보석 기간 중 음주·흡연을 해 ‘황제 보석’ 논란을 일으켜 재수감된 바 있고, 7번의 재판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 징역 3년,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에 2년, 벌금 6억 원을 선고받았다”고 부연했다.
지난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 19개 계열사에 대한 이호진 총수 일가의 김치·와인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33억원) 행위’라며 태광그룹 계열사들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21억 8000만원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회장에게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이호진 전 회장과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지난 3월 대법원은 김치·와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이호진 전 회장의 개입을 인정하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김치 거래는 변칙적 부의 이전과 태광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아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에 기여했다. 이 전 회장은 티시스의 이익과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노동·시민사회는 “김치·와인 일감 몰아주기 사건(2014년~2016년)은 휘슬링락CC 회원권 강매로 인한 배임 혐의 사건과 핵심 내용이 비슷하다”며 “대기업 계열사 전체가 총수의 사익편취를 위해 조직적으로 동원된 사실 및 시기, 동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경영기획실의 지휘에 의한 불법 행위도 이번 고발 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배임 혐의 고발 건과 조직적, 구조적으로 유사한 불법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명백히 판결한 만큼, 검찰의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7월 금융정의연대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을 2000억 원대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노동·시민사회는 “현재 이호진은 태광그룹의 소유주이자 실질적 경영을 지휘하고 있으며, 김기유 역시 ㈜티시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증거인멸의 위험이 매우 크고, 대기업 총수가 사법처리 중 또 다른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