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을 말한다

[줌+] 골프장 캐디 '직장 내 괴롭힘 사망사건' 유족 승소… 法, 건국대 'KU 골프장' 상고 기각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캐디 직장 내 괴롭힘 첫 확정 판결
대법, 파주 골프장 캐디 사망 사건 상고 기각… 1심 판결 확정
산안법 5조 근거로 관리감독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주에 책임


[KJtimes=정소영 기자] 지난 17일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건국대가 운영하는 경기 파주의 ‘KU 골프장’에서 근무하던 캐디 배 모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사망사건과 관련해 건국대 법인이 낸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로부터 노무 제공을 받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건국대학교)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첫 대법원 확정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판결에 앞서 근로복지공단 고양지사는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면서도 산재보상이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해당 판결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님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산업안전보건법 5조(사업주 등의 의무)를 근거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직장갑질119 "가해자의 사용자 건국대 법인, 배모씨 자살 사건 관리 감독 책임 못피해"

2019년 7월부터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KU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배 모씨는 상사인 캡틴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2020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인 캡틴은 100여 명의 전체 캐디를 지휘하는 총 책임자였고, 배 씨를 비롯한 캐디는 손님들에게 수고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골프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근무했다.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은 이후 계속 걸림돌이 됐다. 배 씨 사망 이후 유족은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으나, 고양지청은 “행위 자체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캐디인 배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근로복지공단 고양지사는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면서도 산재보상이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고인을 비롯한 캐디들이 쓴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 때문이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1명 이상 고용하는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경우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적용 제외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회사가 악용한 것이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현재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제도는 사라졌지만, 바뀐 제도는 고인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유족은 가해자인 캡틴과 건국대학교 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가해자인 캡틴에 대해서는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으며 캐디들을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피해자가 괴롭힘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또 건국대 법인에 대해서는 ▲ 배 씨가 법인에 종속돼 노무를 제공한 만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법인은 근로자인 망인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 설령 망인과 법인 간 근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에 따른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부담해야 함에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보호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 ▲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려울 경우 가해자인 캡틴의 사용자로서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의 배상책임을 물었다.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근무형태를 고려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하지만, 설령 근로자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배 씨로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이자 가해자의 사용자인 건국대 법인이 이번 사건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법원 1심 "건국대 법인, 주의 의무 태만 '괴롭힘에 대한 사용자 배상책임 인정'" 판결
 
1심 재판부(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 재판장 전기흥)는 배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닐지라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그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가해자인 캡틴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또한 건국대학교 법인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경기 진행 중 무전으로 망인에게 모욕적인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후 배 씨가 가해자에게 항의하는 취지의 인터넷 게시판 글까지 남겼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게시판 글을 삭제한 뒤 배 씨를 카페에서 탈퇴시킨 점’ 등을 근거로 캡틴의 사용자로서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아 발생한 괴롭힘에 대한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배상책임을 인정했다.(2022가합70004)

2심 재판부(서울고법 민사33부, 재판장 구회근)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골프장 캐디는 특수형태근로자로 사업주인 피고는 이 사건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이었던 망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가해자의 불법행위를 알 수 있었음에도 망인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망인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무제공을 받는 사업주가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건국대 법인이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제77조, 같은 법 시행령 제67조에 따른 사업주 등의 의무를 다 해야 했다는 유족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2023나2014115)
그리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이러한 판결을 확정했다.(2024다207558)
  
이와 관련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이번 확정 판결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해 괴롭힘 피해 방지를 위한 회사의 직접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동법 제77조)와 ‘물건의 수거 배달 등을 중개하는 자’(동법 제78조)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 및 근로조건 개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받지 못했던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는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전반을 포괄해 사용자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만큼,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전반을 보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호 대상과 보호 범위의 확장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법안이 이번 판결을 통해 발굴된 셈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 유족측은 캐디인 배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캐디가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 사업주의 특정한 지시나 지휘 감독에 구속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자영인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노무제공자’라며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2014년 대법원은 근로시간 규정이 미비하고, 이용객에게 캐디피(봉사료)를 받고 있으며, 사업주의 구체적 지휘 감독이 없다는 이유로 캐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이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에 캐디가 특수고용직으로 명시되면서 법원은 계속해서 캐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해 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직장갑질119는 “건국대 법인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근무하던 캐디들은 업무수행을 위해 건국대 법인으로부터 태블릿PC를 교부받았고, 이 태블릿PC에 부착된 GPS를 통해 경기팀으로 캐디들의 위치가 실시간 보고됐으며, 경기팀 직원들과 관리자인 캡틴이 이를 기반으로 무전으로 업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골프장 측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이곳에 캐디가 근무하는데 필요한 자료, 근무 수칙, 출근표 등을 게시해 왔고, 캐디들은 여기에 올라온 일정과 수칙에 따라 근무를 해 왔다. 캐디들은 골프장이 정한 규칙을 위반하면 경기 진행에 참여하지 못하고 잡일을 하는 ‘벌당’(벌로 서는 당번)을 서기도 했다. 즉 구체적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했고, 캐디피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상 무급노동을 회사로부터 강요받기까지 했음에도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판결의 한계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한계 역시 다시 한번 확인됐다.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은 형식상으로는 자영업자,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업주에게 종속 내지 의존하고 있어 근로자로서의 실질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이들을 근로자로 규정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대부분의 개별적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유족을 대리한 직장갑질119 대표 윤지영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를 정한 일반조항이다. 그런데 이 일반조항이 개정돼 2020년 1월 16일부터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의 사업주에게까지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며 “이번 판결은 이 개정된 조문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한 첫 사례로서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해 전체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의 사업주에게 일반적인 보호의무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업주에게 종속돼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는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 이들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고 말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공동대표는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대상이고 산재보험도 적용이 되지만 노동자로서의 안전과 건강은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과 건강은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마다 매우 섬세하게 접근돼야 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들이 함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용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보호대상으로서 특수고용노동자를 인식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감독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수고용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사용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여 행정부가 감독할 수 있는 근거를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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