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한국은행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글로벌 수준과 비교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지속가능성장실을 신설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를 높여왔지만,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의 기후정책을 평가한 녹색 중앙은행 점수표(Green Central Banking Scorecard)에서 16위에 머무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기후변화로 농산물을 비롯한 생활물가가 치솟고, 폭염과 홍수 등 자연재해 증가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등 기후변화가 경제 성장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높아지면서 기후변화 대응은 중앙은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한국은행의 최근 자체 연구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기후변화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도 10%에 가까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며, 단기적으로도 2023년 이후 이상기후 충격이 인플레이션에 10%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은행은 2021년 본격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방향을 제시했고, 관련 연구 활성화와 함께 외화자산에 대한 석탄 및 화석연료 투자 제한, ESG투자 확대 등의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런던 기반 비영리 연구단체인 ‘포지티브 머니’(Positive Money)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2024 녹색 중앙은행 점수 보고서(Green Central Banking Scorecard Report 2024)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전체 평가대상인 20개 중앙은행 중 16위에 그쳤으며, D-등급을 머물렀다.
포지티브 머니는 “녹색금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데 있어 녹색채권 발행량이 부족해 제약이 있는 등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이 같은 평가의 근거로 꼽았다.
포지티브 머니는 연구 및 정책 제언, 통화 정책, 금융 정책 등의 측면에서 G20 소속 국가와 유럽중앙은행의 기후정책을 평가한다. 올해 순위에서는 유럽연합 소속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이 나란히 1, 2, 3위를, 유럽중앙은행이 4위를 차지했다. 브라질과 중국 중앙은행도 각각 5, 6위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또한 보고서는 달러가 갖는 위상과 미국 경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순위는 16위에서 17위로 하락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방준비제도는 유럽의 중앙은행과 달리 기후변화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응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보고서의 수석 저자인 포지티브 머니의 잭 리빙스톤(Zack Livingstone)은 "미국 중앙은행이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글로벌 금융 환경에 미칠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글로벌 금융 리더들에게 연준의 책임을 묻고, 연준이 기후 정책을 채택하고 모범을 보일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근 보고서 '기후위기 앞에 선 한국은행, 그 역할을 묻다'를 발간한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개국 중 16위라는 성적은 한국은행의 현 주소"라며 "연구 영역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녹색 금융중개 지원대출, 한은 담보 및 대출의 기후영향평가, 녹색채권 매입프로그램 등 통화신용 정책수단을 적극 검토·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기후대응이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기후변화가 물가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표면화 된 증거"라며 "한국은행은 물론 정부도 기후변화 대응이 곧 경제와 민생 정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