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한국이 세계 11개 주요 철강 생산 국가 가운데 '철강 탈탄소 정책'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대응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지난 17일 '2023 철강 정책 평가표'(이하 평가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아직 아시아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기에 멀었다"고 평가하며 꼴찌에서 3번째 자리에 위치한 한국의 철강 탈탄소 정책의 현주소를 전했다.
평가표 보고서는 기후 싱크탱크 E3G (Third Generation Environmentalism)가 기후솔루션 등 파트너 단체와 함께 지난 2월에 낸 '2023 Steel Policy Scorecard'의 번역 보고서로, 국내에 이날 처음 소개됐다.
평가표는 철강 생산에서 탄소 배출을 총체적으로 줄일 수 있는 8가지 정책 수단을 각국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평가했다. 8가지 항목은 정책 방향 및 명료성, 정부 재정 지원, 탄소 가격 책정, 소재 효율성 및 순환성, 녹색 철강 정의, 공공 조달, 철강용 수소 및 CCS(탄소 포집 및 저장), 철강용 청정 전력 등이다.
이 평가표는 2022년 G7국가를 대상으로 첫 평가를 시작했으며, 이번에 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등 4개 국을 더해 분석 대상국을 11개로 확대하고 저탄소 철강 전환의 핵심인 '청정 전력'이라는 새 항목까지 포함해 상향된 버전으로 출간됐다.
◆ "한국, 탈탄소 경로 및 지원 정책의 부재로 철강 탈탄소화 신호 모호한 수준 못 벗어나"
2023년 평가표에서 한국은 "아직은 먼 아시아 선두의 자리"라는 총평을 받으며 11개 나라 가운데 중국과 공동 8위에 머물렀다.
평가표는 "한국은 고도로 발전한 혼합 경제 체제를 갖춘 세계적으로 주요한 철강 생산국으로서 아시아에서 철강 탈탄소화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화석 연료가 지배적인 에너지 부문과 야심찬 탈탄소 경로 및 지원 정책의 부재로 인해 철강 탈탄소화의 신호는 모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위는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은 독일에 돌아갔고, 2위는 프랑스, 3위는 이탈리아가 차지했다. 중국은 한국과 동점으로 8위에 올랐으며 일본이 그 밑에 9위에 머물렀다. 브라질은 철강 탈탄소 정책 꼴찌로 꼽혔다.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성적을 자세히 보면 정부 재정 지원, 녹색 철강 정의, 수소 및 CCS와 청정 전력 등 3개 부문에서 특히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정부 지원금의 경우 수소 직접환원제철 기술과 같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잠재력이 높은 기술에 투자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저탄소 철강 기술에 개발연구(R&D)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다른 경쟁 국가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액수가 적었고, 설비투자 비용(CAPEX)과 운영비 지원 역시 크게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녹색 철강 정의' 부문 경우, 녹색 철강에 대한 국가차원의 표준을 수립해 기후 정책과 보고 체계와 연결하는 것이 생산과 수요 증가에 매우 중요하기에 살펴보는 부문이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녹색 철강 정의 채택을 위한 실무단이 부재하고 채택 의지에 대한 공식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이다.
2023 평가표는 한국이 "철강 구매자에게 무엇이 '녹색(그린)'인지 명확하게 보증하지 않고도 특정 제품 라인을 '그린'이라고 마케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철강 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국가 전략이 부재한 점이 약점으로 꼽혔다. 전기로(EAF)와 수소직접환원철(H2-DRI) 등 석탄 고로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고 보다 많은 전기를 쓰는 방식으로 공정을 전환하게 되면 철강 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력 부문은 여전히 수입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2년 7.15%에 불과하며 현재 계획대로면 2030년에 18.2%로 겨우 10%포인트가량 증가할 계획이다(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1.6% 가운데 기존 화석연료 관련 기술인 '신 에너지' 비중을 뺀 재생에너지만의 비중이 18.2%임). 2022년에 직접 전력 구매 계약(PPA) 분야에서 일부 진전이 있어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업체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됐지만, PPA 단가를 낮추는 등 국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상태라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또 수소 부문 경우, 한국의 수소 전략은 '청정 수소' 수입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은 청정 수소의 국내 생산 비율을 2030년까지는 34%로, 2050년까지는 6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가 수소 정책은 철강 부문 전환을 위한 청정 수소의 필요성을 인식해 철강사에 청정 수소 생산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최종 수요처에 대한 명확한 우선 순위를 제시하지 못한 채, 상업용 차량과 전력 부문에서의 적용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철강 제조 선도국으로 발돋움 위해 22대 국회 의지가 중요"
보고서 공동 저자인 E3G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 분석가, 알렉산드라 왈리스제브스카(Aleksandra Waliszewska)는 "2024년은 국제 철강 탈탄소화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녹색 철강 시장을 구축하고 녹색 철 파트너십을 추구하기 위해 표준 설정 및 공공 조달 분야에서 특히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며 "동아시아 국가들은 특히 청정 전력 및 수소 인프라 구축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전력 시스템 탈탄소화에 대한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청정에너지 인프라 정책 및 계획에서 제철업을 주요 최종 용도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았음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제언을 바탕으로 한국이 기후 위기 시대의 철강 제조 선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새로 출범할 22대 국회의 의지가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에서 "과감한 탄소감축으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 부문의 구체적 전략으로 탄소중립산업법(한국형 IRA법) 제정과 녹색 공공조달의 확대, 기후테크 등 탄소중립 R&D 투자 확대 등을 내걸었다. 또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기후산업 키워 지역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며 '탄소중립 설비교체, 저탄소 기술개발 등 재정지원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보고서 가운데 한국 국가 프로필 부분 공동 저자인 기후솔루션 철강팀 김다슬 정책 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기간산업이자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16.7%를 차지하는 철강 산업은 현재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수단인 배출권거래제에서 전량 무상할당을 받으며 탄소 가격을 제대로 지불하고 있지 않다"며 "탄소배출 규제가 점차 강화되는 탄소중립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 녹색 철강 생산의 단가를 낮추고 한국형 수소환원제철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빠른 대책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