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창용(34)이 초특급 대우를 받으며 소속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잔류하기로 하면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마무리 투수로 최고 자리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임창용은 28일 야쿠르트와 3년간 무려 15억엔(한화 약 206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재계약에 동의했다.
임창용이 2년 뒤 미국 진출을 원하면 풀어준다는 조건이 달렸기 때문에 사실상 3년이 보장된 좋은 조건이다.
내년 연봉도 4억원(한화 약 55억원) 수준으로 올해 1억4천600만엔(약 20억원)보다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는 올해 연봉 기준으로 일본 프로야구 투수 가운데 상위 3위에 들 정도로 많은 액수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이와세 히토키(주니치.4억3천만엔), 후지카와 규지(한신.4억엔) 등만이 연봉 4억엔 이상을 받았다.
또 팀 내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 투수 가운데도 가장 많은 연봉을 확보했다. 일본에서 3시즌을 뛴 뒤 초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하지만 임창용이 2007년 말 일본 진출을 선언했을 때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삼성에서 2007시즌 5승 7패에 평균자책점 4.90을 올리는 등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창용은 이런 주위 우려를 단숨에 날리며 일본 무대 데뷔 첫해부터 대단한 성적을 올렸다. 2008시즌 1승5패에 33세이브를 올리며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2009년 28세이브를 작성했고 올해 35세이브로 리그 2위에 오르는 등 특급 활약을 이어가더니 마침내 대박 계약을 일궈냈다. 일본에서는 3년 동안 96세이브를 올렸다.
임창용은 올해 팀 성적만 좋았다면 일본 통산 100세이브는 무난히 넘겼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고시속 160㎞를 찍는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새로 연마한 싱커를 앞세워 난공불락으로 자리매김했다.
임창용은 한국에서도 특급 소방수로 활약을 펼치면서 최고 마무리에 오른 바 있다.
1995년 해태에서 데뷔한 임창용은 1997~1998년 두 해 동안 60세이브를 올리는 괴력을 드러낸 뒤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옮겼다. 삼성은 최고 타자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을 내주면서 임창용을 영입했다.
임창용은 삼성 유니폼을 입은 1999년에도 13승 4패에 38세이브를 작성하면서 세이브왕 2연패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승수는 5승(4패)로 줄었지만 30세이브를 따내면서 여전한 구위를 이어갔다.
2001년부터는 선발로 전환해 성공을 거뒀다. 2001~2003년 3년 동안 44승을 올렸고 2004년에는 다시 마무리로 돌아서 36세이브를 따냈다.
잠시 선발로 '외도'했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최고의 영예를 누린 셈이다. 한국 무대 13시즌 동안 104승 66패를 거두며 168세이브에 평균 자책점 3.25를 남겼다.
다만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시즌이 끝난 뒤 해외 진출 자격을 얻었던 임창용은 메이저리그 구단을 대상으로 포스팅시스템에 따라 공시했지만 한 구단만이 65만달러를 제시해 미국 진출을 포기했다.
2004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임창용은 해외 진출을 타진하다가 포기하고 삼성 복귀를 선언했지만 '헐값'에 가까운 2년간 18억원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내 프로야구 시절 막판 자존심을 구긴 게 임창용에게는 큰 자극제가 됐다. 절치부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임창용은 전성기를 뛰어넘는 구위를 회복해 최고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