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1940년 9월 11일 일제 강점 하의 경성부, 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의 6남1녀 가운데 삼남으로 태어났다.

1959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상대에 진학해 1965년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두산가(家)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MBA 학위를 취득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나온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 김영희씨와 혼례를 올렸다.

한국투자금융과 한양투자금융 등에서 금융 업무를 익힌 뒤 1974년 두산식품 전무로 그룹 일에 참여했다. 198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1993년 두산그룹 부회장, 1994년 오비맥주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뒤 2001년 한국중공업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 회장이 되면서 두산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2007년 두산중공업에 복귀해 2015년 중앙대학교에서 물의를 일으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회장직에 있었으며 2005년에는 두산그룹 회장을 겸임하기도 했으나 두산가(家) 형제의 난이 터져 회장직에서 금방 내려왔다.

대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8년 서울상공회의소에서 부회장, 1991년 한국상업은행 이사회 회장, 1998년 국제상업회의소(ICC) 한국위원회(KNC) 의장을 지냈고 2000년 서울상공회의소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17대 회장에 선출됐다. 같은 해에 국제상업회의소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0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연임에 성공했고 2005년 제45대 국제상업회의소 회장이 됐다.

스포츠인으로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1986년 대한유도협회 회장과 아시안게임 유도경기위원장을 거쳐 1989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을 맡았다. 200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고 2009년 제37대 대한체육회 회장과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국제올림픽위원회 국제관계위원회 위원, 2011년 아시아올림픽위원회 부회장,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2013년 대한체육회 회장 임기가 끝난 뒤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2005년 7월 故 박용오 전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발생했다. 박용오 전 회장이 이사회 하루 전날인 7월 21일 검찰에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 등 진정서를 제출하며 ‘형제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두산산업개발이 고려산업개발과의 합병 때 분식으로 인해 합병비율 산정이 불공정하게 이뤄져 총수 일가가 부당 이득을 챙긴 점과 합병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췄다는 의혹,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 시 오너 일가가 신주인수권 중 상당수를 삼화왕관과 두산포장 등 계열사에 매각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소액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일어났다.

검찰은 10여년간 회삿돈 326억원 횡령, 비자금 366억원 조성, 두산산업개발의 2838억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박용오∙박용성∙박용만 세 형제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2006년 2월 1심에서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80억원, 박용만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필요성’을 천명한 뒤 법원이 횡령∙배임 등 경제적 악영향이 큰 대형비리 사건을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가운데 발생한 재벌기업 비리 사건이었다.

그러나 1심 판결이 재벌기업 총수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3∙5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여론이 일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역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라며 비판하고 나섰지만 2006년 7월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이 가족 및 그룹과 결별하고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두산가 형제의 난은 마무리됐다. 박용성 전 회장은 동생 박용만 전 회장과 함께 상고를 포기하고 2007년 2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됐다.

2008년 중앙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해 학계에도 발을 들였다. 박 전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중앙대는 기업식 경영방식을 도입해 각종 대학 평가에서 순위가 상승하는 등 고평가 받았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학과는 인원을 증원하고 반대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학과를 폐지하는 등 학문을 연구하는 ‘상아탑’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다.

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이사장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대학 구성원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길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학과제 폐지 등 구조조정이 한창일 당시인 2015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조두(새대가리)”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주겠다” 등 막말이 섞인 이메일을 발송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박 전 회장은 이 메일에서 중앙대 비대위를 조롱하며 ‘비데(Bidet)위’라고 부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앞서 구조조정에 반대한 학생들을 퇴학 처분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교내에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이 파업하자 이들이 대자보를 부착하거나 구호를 외칠 때마다 1인당 100만원씩 학교에 지급하라는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중앙대학교 교수비대위는 즉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 해 5월 서울지방검찰청에 모욕죄∙협박죄∙사립학교법 위반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11월 검찰에 의해 모욕 혐의로 벌금 15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박 전 회장은 당시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학교법인 핵심부로 수사범위를 확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을 중앙대 본·분교 및 적십자간호대학 통폐합, 단일교지 승인을 도운 대가로 박 전 수석에게 1억여원 상당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에게 징역 5년, 박 전 수석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2015년 11월 1심은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박 전 수석에게 징역 3년과 벌금 3000만원, 추징금 3700만원을 선고했다.

2016년 4월 2심은 박 전 회장의 1심 형량을 유지하고 박 전 수석에게 1심보다 감형된 징역 2년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시절 아테네와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에서 국가대표 선수들 모습 찍기에 골몰한 일, 인터뷰 도중 주변 풍경이 마음에 들자 취재기자의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고 메모리 칩을 빼낸 일 등 사진과 관련한 일화가 많다.

배우자 김영희씨와 슬하에 2남을 뒀다.

장남 박진원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두산음료에 입사해 두산 산업차량BG 사장을 역임했다. 평범한 집안의 김선영씨와 결혼해 상효∙상인 두 딸을 뒀다. 2015년 성추문에 휘말려 그룹 내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가 2017년 5월 두산그룹의 벤처투자사 네오플럭스 부회장에 임명돼 재검증에 나서고 있다.

차남 박석원은 두산 엔진 사장이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와 같은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형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집안 출신인 정현주씨를 배필로 맞아 상현∙상은 두 딸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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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40년 9월 11일
직업: 기업인
직함: 전 두산중공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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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박두병 

1910년 10월 6일~1973년 8월 4일 

두산그룹 초대회장 

모 

명계춘 

1913년 1월 30일~2008년 9월 16일 

전 두산산업 감사 

형 

박용곤 

1932년 4월 17일 

두산그룹 명예회장 

누나 

박용언 

1933년 

 

형 

박용오 

1937년 4월 29일~2009년 11월 4일 

전 성지건설 회장 

남동생 

박용현 

1943년 9월 16일 

예술의전당 이사장 

남동생 

박용만 

1955년 2월 5일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남동생 

박용욱 

1960년 4월 3일 

이생그룹 회장 

배우자 

김영희 

1943년 

 

장남 

박진원 

1968년 

네오플럭스 부회장 

차남 

박석원 

1971년 1월 

두산엔진 사업부문장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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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경기고등학교 졸(195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1965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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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한국투자금융 상무이사(1973년)
두산식품 전무이사(197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1984년)
아시안게임 유도경기위원장(1986년)
대한유도협회 회장(1986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1988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1989년)
서울상공회의소 비상근부회장(1991년)
한국상업은행 이사회 회장(1991년)
오비맥주 대표이사 회장(1994년)
국제유도연맹 회장(1995년)
국제상업회의소(ICC) 한국위원회(KNC) 의장(1998년)
제17대 서울상공회의소 회장(2000년)
제17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00년)
국제상업회의소(ICC) 집행위원(2000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200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2001년)
제18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03년)
제45대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2005년)
두산그룹 회장(2005년)
두산중공업 회장(2007년)
중앙대학교 이사장(2008년)
제37대 대한체육회 회장(2009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 국제관계위원회 위원(2010년)
아시아올림픽위원회 부회장(2011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2011년)
대한체육회 명예회장(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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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1986년)
제14회 상공의날 은탑산업훈장(1987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1988년)
대한민국체육상 진흥부문(1989년)
제22회 전국품질경영대회 금탑산업훈장(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스포츠윤리상(1998년)
서울엔젤그룹 초대회장(1999년)
벨기에 왕립훈장(2000년)
제2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서상돈상(2001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2년)
제33회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공로금장(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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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두산 63만4558주(3.14%)
두산건설 8843주(0.01%)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