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코로나19’ 못다 한 이야기①] 대구의료원 의사 정명희 ‘코로나와 전쟁’

코로나 진원지 대구지역 한 여의사의 목숨을 건 전염병과의 사투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

 

[KJtimes]코로나19가 끝이 없어 참 우울하다. 거리를 나서니 꽃들이 눈을 환하게 한다. 자연은 변함없이 찾아와 가로수 잎에 흰 눈이 내린 것 같은 이팝꽃 축제를 열고 있다. 며칠 전, 확진자가 줄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번엔 카니발 코로나가 퍼지고 있다. 이태원 클럽에 다녀간 이들이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하루하루 불안하기 그지없다. 지역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도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밤낮없이 선별 진료소를 운영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폭발적으로 나오는 코로나19 의심환자들로 선별 진료소에서 24시간 쉼 없이 당직하던 때엔 정말 힘들었다. 밤 당직을 끝내고 너무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입원한 환자들을 급히 다른 곳으로 보내고 병동을 통째로 비워야만 했다.


어디로 가라고 내쫓느냐고 단체로 항의하는 환자들을 설득하여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날 수 있다며 다독였다.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할 수 있도록 환풍구를 막고 칸막이를 설치하여 드나드는 출입 동선을 재정비하고 격리시설을 갖추느라 전 직원이 밤을 꼴딱 새워야 했다.


병동에서 강제로 퇴원해야만 했던 기존의 환자들 수백 명은 집에 가서 더 아프면 어떡하냐며 눈물을 보인다. 마음 아파 차마 마주볼 수가 없다. 그들이 비워준 자리에는 밤새 119 구급대에 실려 오는 코로나19 환자들이 들어갔다.



세 자리 숫자를 훌쩍 넘긴 접수번호를 받아들고 선별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 마음은 얼마나 쑤시고 아릴까.


모르는 사이 확진자와 접촉하게 되어 검사에서 혹시나 양성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밤이 깊어 입김까지 하얗게 오르는데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끼고 마스크를 코가 아프도록 눌러서 쓰고 장갑을 낀 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진료기록을 입력하고 검사 처방 내기를 반복했다.


쉴 틈 없이 문진하고 처방을 내느라 어느새 날짜 변경선을 넘듯, 시각은 자정을 넘어 새날이 되었던가 보다. 새벽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무던히도 기다렸을 가슴 아픈 이들, 얼른 검사받고 괜찮은 결과를 얻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랐다.


수천 명의 환자가 생겨 입원을 대기하던 중 사망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보다 못한 대구시 의사회가 나섰다. 의사들이 자원하여 전화 모니터링을 우선 시작하자고. 죽음의 공포에 있는 이들에게 불안한 마음을 전화로라도 상담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일백 육십여 명의 의사가 순식간에 자원 대열에 동참했다. 전화기 너머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불안해 할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면 곧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달래주었다. 아이들이 고열에 먹지 못해 보채고 밤이면 늘어져서 할딱댄다고 흐느끼면 얼른 긴급 치료가 필요함을 핫라인에 알리곤 했다.


그런 인연으로 연결된 이들이 이젠 거꾸로 안부를 물어온다. 화장실 하나 딸린 작은 집에 살면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던 어느 가장은 2이 코로나를 이기는 데는 제격인 것 같다며 웃었다. 방에 틀어 박혀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완벽한 격리생활 실천이라고 하면서.


다른 식구는 그나마 밥도 같이 먹다 보니 딸에게서 엄마에게로, 또 아빠에게로 코로나19가 스며들어버렸다면서 후회하고는 아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중학생 아들은 다른 식구들 격리 해제를 위한 검사에서도 완벽하게 음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시대의 명언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고 하던가.


사연도 많아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해가 바뀌어 대한민국으로 왔다는 한 새터민은 남한에서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 낳고 살았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동네 나갔다가 아는 분 손에 이끌려 마음수련장을 다녔다고 했다.


곤히 잠든 한밤에 경찰이 문을 두드려 깜짝 놀라 나가 보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무서운 말을 하여 선별 진료소를 찾게 된 이야기를 전하며 세상 모든 죄를 다 지은 듯 고개 떨군다.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훔친다.


검사 결과 온 가족이 몽땅 양성이다. 이런 난리가 없다. 시키는 대로 한밤중에도 찾아와 검사받고자 하는 이들의 수심 어린 얼굴이 애처롭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을 그들, 모두 잘못되지 않고 이 시기를 잘 견뎌내기를 소망한다. 나쁜 기억은 경험이라 부르고 좋은 기억은 추억이라 일컫지 않는가.


환자가 너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입원할 병실이 없어 대기 중에 사망하는 이가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되어 공포가 일었다. 입원실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고 생활치료센터를 개소하여 경증환자들을 입원시켰다.


3월이 되자 급히 중앙교육연수원, 경주 농협연수원에 생활치료센터를 열었다. 뒤이어 학생들이 기거하는 경북대학교 기숙사를 비워서 치료센터로 만들었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아이는 가족실에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도 고열과 코피가 이어져 밤 깊은 시각에 병원으로 실려 왔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시작하자 금세 열이 내리고 좋아지기 시작한다. 젊은 엄마는 입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입원하고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평소에는 보기 힘들 것이리라.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쓴 고글이 뿌옇게 흐려온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몸은 땀으로 젖어들지만 우리 인류가 처음 대하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환자는 얼마나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었을까.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더 아려온다.



수백 명을 웃돌던 하루 확진자 수가 4월 되자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한 사람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던 날, ‘0‘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에 또 이어지는 숫자를 보면서 그래도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불이 나고 난 뒤 잔불이 다시 일어날까 봐 조심스레 뒤돌아보면서 살피고 또 살피면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하는 마음으로 보내야겠구나, 생각을 가다듬는다.


세상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우울한 요즈음, 세계적인 공연을 안방에서 온 세계 사람들이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되어 즐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코로나19에서 찾을 수 있는 선함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모두 나쁜 것만도, 100% 좋은 것만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으리라.


아무리 험하고 힘든 상황이더라도 밝고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면 한 줄기 가느다란 빛줄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으랴. 검은 구름장 위에도 햇살은 변함없이 밝게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을 터이니까.


본립도생(本立道生) 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기본에 충실하면서 언젠 가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으로 기다려야 하지 않으랴. ‘잠행 하는 바이러스라고 하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보고 싶은 얼굴 어루만지며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약력 :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


         -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부회장


         -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한국여자의사회 대구·경북지회장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